독서

[조선일보Books] 숲의 가족

네다 2008. 8. 25.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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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마을의 동물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중편소설|박미영 옮김|창비|144쪽|9500원
 
소설가 아모스 오즈(Amos Oz·69)는 해마다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이스라엘 문학의 대표주자다. 그러나 문학 밖에서 그는 외로운 아웃사이더 신세다.

유대인 민족국가 건설을 지지하는 시오니스트였던 그는, 1967년 '6일전쟁'을 목격한 뒤 평화 운동가로 변신했다. 이스라엘의 국경 안에서 두 민족이 공존하는 '두 국가(two-state) 체제'를 지지했으며, '지금 평화(Peace Now)'라는 반전단체에서도 활동했다. '애국'과 '민족주의'라는 대세에 묻어가기를 거부한 대가는 컸다. 그는 주류사회로부터 오래도록 침묵을 강요당했다. 소설의 바탕에는 이처럼 정치적 소수자로 몰렸던 아모스 오즈의 개인적인 경험이 깔려 있다.

동물이 한 마리도 살지 않는 이상한 마을이 있다. 그곳의 아이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동물을 본 적이 없다. 어느 날 소년 니미가 숲에 다녀온 뒤 '소리를 지르는 병'에 걸리고 만다.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보았는지 알지 못했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그를 따돌리고, 부모는 니미와 어울리지 말라고 경고한다. 눈물과 콧물을 흘리고 앞니 사이가 벌어졌다며 마을 사람 모두가 그를 따돌렸다.

그러나 한 세대 전만 해도 마을에는 동물이 있었다는 것, 바깥 세상을 여행하고 온 젊은이들의 입을 통해 동물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조용히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갔다. 동물의 울음소리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이 있었고, 전에 어부였던 남자는 아이들에게 동물 인형을 만들어주었다.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던 소년 마티와 마야가 비밀을 캐기 위해 동물들이 사라진 숲으로 들어간다.

소설은 독자들에게 끊임없이 소설 속 상황과 현실 세계를 빗대어 떠올리게 한다. 마을사람들은 동물 이야기를 하는 이들을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그들이 비웃는 이유는 "오랫동안 마을에서 동물을 본 적이 없기 때문"(54쪽)이다. '동물은 있다'는 보편적 진실은, 특정한 공간과 상황 아래서 어느 사회의 주류가 된 이들로 인해 오히려 부인당한다. 동물을 본 소년의 말(言)은 언어가 아닌 소통할 수 없는 '소리'일 뿐 아니라 '병'으로까지 규정된다.

마야와 마티가 숲 속에서 만난 네히는 작가의 분신이다. 네히는 '톨리넨'이라는 열매를 동물들과 함께 먹으며 산다. 너그러움과 아량, 인내로 빚은 상상 속의 열매 '톨리넨'은 아모스 오즈가 이스라엘 사회에 제시하는 소통의 처방전이다. 서로 다른 의견이 거리에서 극단적으로 대치하곤 하는 우리 사회에 대해 반성적 성찰을 요구하는 작품으로도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