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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정호승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겨울밤
막다른 골목 끝 포장마차에서
빈 호주머니를 털털 털어
나는 몇번이나 인생에게
술을 사주었으나
인생은 나를 위하여
단 한번도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눈이 내리는 날에도
돌연꽃 소리없이
피었다 지는 날에도
인생은 나에게
술 한잔 사주지 않았다.
인생은 원래 정을 주지 않는 법이다.
주고 받는 것 없이 그냥 무던하게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이 인생이다.
그래도 진득한 게 인생이다.
인생은 나에게
밥 한끼 먹여주지 않았지만
꽃 한송이 건네주지 않았지만
술 한잔 사주지 않았지만
나의 울음은 항상 기꺼이 곁에서 듣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