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셰인 액커
음성 일라이저 우드, 존C. 라일리, 제니퍼 코넬리
2라면 널 구하러 가지 않았을까?
나 혼자서는 할 수 없어.
처음으로 돌아가. 네가 태어났던 그 곳으로.
영화는 인류가 스스로 개발한 기계에 의해 종말을 맞은 것이 전혀 슬프지 않은 지구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아이, 로봇> <터미네이터>와 같은 다른 많은 영화들에서도 그랬지만 인공지능은 결국 기계들에게 슬픔과 분노를 심어주고 정신과 육체가 균형을 이루지 않는 기계들은 디스토피아를 불러온다. 기계 대 기계의 전쟁이라면 차라리 모든 것이 파괴되겠지만, 기계 대 인간의 전쟁이라면 결과는 명백하다. 기계는 슬퍼할 수는 있지만 인류의 종말따위를 위해 슬퍼하지는 않는다.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인류의 종말을 무덤덤하고, 얄밉게까지 그려낸다. 어쩌면 오히려 '인간이 만든 과학의 무지'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인류의 종말을 고소하게 생각하거나 사필귀정이라고 알려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렇든 저렇든 영화는 인류가 멸망한 것을, 진실로 지구위에서 인간이 한마리도 남지 않은 것을 아무 감정없이 배경으로 깔고 시작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아니, 봉제인형들은 아주 작고, 각자 하나의 일반적인 캐릭터를 대변한다. 모두 9명밖에 되지 않지만, 사회는 형성된다. 지배하는 자와 충성스러운 자. 핍박받는 자와 반항하는 자. 도망가려는 자와 맞서 싸우려는 자. 봉제인형들은 하나의 캐릭터를 담당하고 있지만 고전문학 속의 일관성 있는 인물이 아니라 현대문학 속의 다차원적인 인물이기 때문에 작은 사회이지만 지금의 인간사회를 정확히 반영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사회일지라도 규칙이 있고, 불합리한 점이 있다는 것은 신기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키려는 자와 지켜주어야 하는 자를 발견한다. 6은 정상이 아니고, 알 수 없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지만 미래의 길을 알고 있다. 3과 4는 어리고 너무나 약하지만 과거를 보여준다. 2는 늙고 무모하지만 정의와 신념을 갖고 있다. 세상에도 다른 세계를 알고 있는 이들이 있지만, 이들은 보통 여리고 약하다. 우리가 1, 5, 7, 8같은 존재들이라면 2, 3, 4, 6들을 지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9를 기다려야 한다. 9는 완성된 상태에서 우연히 찾아올 수도 있지만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때 누구를 만났느냐가 결정하는 경우도 있다. 9가 처음 2를 만나고 friend를 배웠던 것이 그 경우이다.
세상은 낙관적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만들어간다. 때로 이들은 희생을 무릅쓰기도 하지만, 실제로 희생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낙천적이기 때문에, 희생을 희생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고, 이들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은 우리의 친구들이다.
세밀하게 잡은 행동 디테일, 흥미진진하게 돌아가는 카메라 앵글, 곳곳에서 돋보이는 만화의 상상력. Over the rainbow와 함께 쫓아오는 Machine의 공포는 티무르 베크맘베토브에게서 배운 것이리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성공적이었던 목소리. 줄거리를 차치하고서라도 이 영화는 기술과 흥미 요소만로도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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