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팅 대비 전력 강화를 위한 문자 맞춤법 팁
침묵은 금이고, 달변은 은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이런 능력자는 아니니, 말을 하려면 제대로 말해야 한다.
맞춤법 정도는 맞춰줘야 한다는 말이다. 맞춤법에 맞는 말이 동(銅)이라면, 그마저도 틀린 말은 똥이기 때문이다.
물론 '맞춤법 따위는 그 사람의 인격과 아무런 관련이 없어!' 라고 생각하시는 프리스타일 소울들께는 안 통하겠지만,
그런 분들은 일단 입사시험에서 '자네, 이거 일부러 이렇게 쓴건가.' 하시는 면접관님의 진심어린 질문을 먼저 들어보시기를 권한다.
문자는 자신의 농축된 맞춤법 실력을 단타로 까발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아무리 애교있는 말투와 간단한 축약어, 의도적인 오타를 내는 세상이긴 하지만,
세상은 아직 몰라서 틀리는 맞춤법과 일부러 틀리는 맞춤법을 헷갈릴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그냥 넘어가주면 안 돼겠니"
아이콘과 별명을 보면 from. 웃대
'오나전' '하짐나' '그랬자나' '그래쏘요' 같은 말들이 허용은 되지만
단, '내가 그런 것은 당신에게 귀여움을 받기 위해서지 결코 나의 무지를 드러내기 위해서인 게 아냐.' 라는 증거를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소개팅을 주제로 한 것은 의외로 많은, 디테일에 강하면서도 마음만은 소심한 분들께서
소개팅남 -혹은 녀- 께서 보낸 문자 하나에 풍부한 고민을 하시기 때문이다.
라는 문자를 받고 "께요"라는 말이 거슬리지 않는다면 그런 분은 이 글을 프린트해서 읽어야 한다.
'핸드폰을 산지 얼마 안 돼서 자판이 익지 않아서 그럴거야. 그냥 단순한 타이포야.'
'어쩌면 잠시 헷갈린 걸 수도 있어. 제대로 알고 있을거야.'
'이 말만 모르는 것일거야. 잘못 알고 있는 것일거야.'
'공대라서 그럴거야. 언어에 취약할 수도 있어.(공대라도 그럴리 없습니다.)'
'이 사람 국어시간에 뭐 했지?'
이런 오해를 사지 않으려면 적어도 80바이트 안에서 심금을 울리고 가슴을 적시는 문장의 향연은 못 펼치더라도
맞춤법 하나는 틀리지 않아야 한다. 실제로 적지 않은 언니오빠들이
"소개팅에 세미원빈이 나왔는데 문자를 받아봤더니 '국어선생님께 꽤나 꼬집혔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계륵같은 놈을 어찌하느냐."
하는 고민을 해본 적이 있다고 한다고 한다.
더군다나 맞춤법 같은 것은 별 시덥잖은 것이 사람의 자존심과 직결되어 있어, 꼬집어 지적하기도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소개팅을 앞두고 있는 선남선녀들을 위해서 '소개팅용 문자 맞춤법'을 알려드리려고 한다.
시간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일 입고나갈 자켓과 깔맞춤한 구두는 준비했으면서 이런 시덥잖은 것 하나 실수해서
'소개팅 필승을 위한 128% 전력'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바라는 마음 뿐이다.
네이년에 정확한 맞춤법을 알고 싶은 한글자만 입력하면 수백가지 답변이 나오는 것도 알고 있지만,
'소개팅용 맞춤법'은 아직 특허 전인 것으로 알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겠다.
1. 되 vs. 돼
가장 흔하게 저지르는 만행이자, 가장 눈에 거슬리는 한 글자. '하면 안 되?'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되와 돼' 커플은 '하와 해' 커플로 변환하면 된다.
어려우면 '하면 된다' 하나만 기억해도 된다. '하면 한다'와 '되면 된다'로 인수분해가 가능하니 말이다.
하다, 하기로 하다, 할 수 있다, 한다는 것이다 → 되다, 되기로 하다, 될 수 있다, 된다는 것이다
했다, 했을 것이다, 했음직하다, 했을 법하다 → 됐다, 됐을 것이다, 됐음직하다, 됐을 법하다
철수 : 우리 내일 7시에 만나기로 할까요^^?
영희 : 6시에 만나면 안 될까요? 제가 일찍 집에 들어와야 돼서^^;;
철수 : 전 아무때나 만나도 돼요^^ 그럼 6시에 뵙기로 하죠.
보기와 같이 '할까요'에 대응하는 말은 '될까요'이다. '돼서'는 '해서'를 대체할 수 있는 말이다.
자매품으로 '뵈와 봬'가 있다. 하-되-뵈, 해-돼-봬 쌍으로 기억하면 된다.
네이년에 '맞춤법 편지'라고 입력하면, 맞춤법에 취약한 남자친구를 어여삐 여기는 여자친구의 애교만점 편지가 있을 것이다.
<맞춤법 편지>
저작권 위반시 삭제보다는 두분 오래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의 맞춤법 책 한권으로.
하지만 웃어야 하는 상황에도 마음껏 웃지 못하고 가슴 한 구석 찡해온다면.
아무튼 그 편지의 1번 예시가 바로 '안과 않'이다.
여자친구가 아주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않'은 아니하다의 준말, '안'은 아니다의 준말이다.
실제 활용시 헷갈리기 쉬우므로, '않'의 경우 '않다, 않아, 않네'와 같이
문장이 바로 끊어질 때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기억하면 쉽다.
'않 가다, 않 먹다, 않 입다, 않 씻다' 같은 말은 여자친구에게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여자친구의 예시가 매우 정확하기 때문에 표절하겠다.
기분이 좋지 않다. / 기분이 안 좋다.
오늘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 오늘은 학교에 안 간다.
적응되지 않아. / 적응 안 돼.
너 오늘 학교 안 가지 않아?
철수 : 차가 많이 밀리네요ㅠㅠ 아직 도착 안 하셨죠^^?
영희 : 이쪽은 많이 밀리진 않아요. 먼저 도착하면 기다리고 있을게요^^
'맞춤법 편지'가 나온 김에 다 표절해버리겠다. 경찰서 잡혀가면 어떻게 하지? 어떡하지?(응?)
'어떻게'라는 말은 완전한 하나의 단어이다. '어떻하지?' 같이 끊어서 이어붙일 수 있는 어근(맞나?)이 아니다.
'어떠어떠하게 하다.' 라는 말에서 '어떻게 하다.' 라는 말이 도출되어야 하고, 다시 '어떡하다.'라는 말이 도출되어야지,
'어떻게 하다'라는 말에서 '게'만 빼놓은 채 '어떻하지'라는 말이 나올 수 없는 것이다.
의심되면 소리내어 읽어봐도 좋다. 우리는 분명히 [어떠카지] 라고 읽는다 [어떳하지 → 어떠타지] 가 아니라는 말이다.
영희 : 어떡하죠^^? 제가 더 늦을 것 같은데요.
철수 : 여기서 기다려도 되고, 먼저 들어가 있어도 되고. 전 어떻게 하든 상관 없어요^^
영희 : 많이 늦을 것 같은데 먼저 들어가 계세요^^
매우 인위적이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ㅠㅠ
한글이 소리나는 바를 나름 정확하게 반영한다고 하지만 모두 다 소리나는 대로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께요'는 엄연히 틀린 말이며, 항상 '게요'로 써야 한다. '께요~' 는 애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혹시나 친구에게도 '응, 금방 갈께'라고 쓰고 있다면, 이걸 고쳐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는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도 같이 갖고 가길 바란다.
영희 : 죄송해요. 금방 갈게요^^;;
철수 : 천천히 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상황이 점점 소개팅과는 멀어지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 말은 문자쓸 때 얼마든지 많이 쓰는 말이므로 반드시 정확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사실 '하는데'와 같이 쓸 때는 거의 틀리지 않는 '데와 대'가 남의 말을 전하라고 하면 엉망진창이 되어버리기 쉽다.
'하는데, 그러는데'와 같이 '데'는 문장 분위기를 전환할 때 쓰거나 혹은, '더라'의 뜻으로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을 말할 때 쓰는 말이다.
'이렇대, 저렇대'와 같이 '대'는 '다고 해'의 뜻으로 남의 말을 옮길 때 쓰는 말이다.
그러나 헷갈리는 것은 남의 말을 전달할 때 근거를 부여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영희 : 숙희가 그러는데, 교장이 어제 저녁에 약주하고 노상방뇨했대.
명자 : 아니라는데? 노상방뇨는 학주고 교장은 그 위에 오바이트했다는데?
영희의 말처럼 누군가 말한 것을 그대로 옮기려면 끝에 '대'를 써야 한다. '글쎄 그렇대'를 기억하면 쉬울 것이다.
'숙희가 그러는데'를 살펴보면, 영희가 뜻하는 것은 '나는 숙희가 말한 것을 너에게 그대로 전하노니, 그렇다더라' 하는 것이므로,
문장 전환을 위해서 '숙희가 그러는데'로 쓴 것이다.
명자가 자기의 경험에 비추어 보고는 '아니라던데?'라고 반박하며, '오바이트했다는데?'로 마무리했다.
모두 명자가 어디선가 주워들은 것을 경험으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말로 하면 적당히 얼버무리기 때문에 잘 티 안나게 헷갈리는 말이 바로 '든과 던'이다.
'하든데~' '어떻던지간에' 라는 문자를 보내면 받는 사람까지 '이게 뭐 이리 찜찜하지?' 하는 기분이 들 것이다.
상대방을 혼돈의 구렁텅이에 빠뜨리지 마시라.
'든'은 여러개 중 선택의 의미이고, '던'은 과거 경험이나 개인적 의견의 의미이다.
영희 : 검정과 빨강중 뭘 살지 고민이에요. 파랑도 예쁘던데.
철수 : 검정을 사든, 빨강을 사든, 파랑을 사든 영희씨한테는 뭐든지 잘 어울릴 거에요.
영희와 철수가 부쩍 가까워졌다. 영희는 철수에게 은근슬쩍 자신의 고민을 전달하기 위해서 '던데'라고 소심하게 운을 뗀다.
철수는 영희의 고민이 성가시기만 하다. 이렇든 저렇든 만수산 드렁칡이 한데 얽혀 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이다.
'같다'는 '비슷하다'이다. '갖다'는 '가지다'이다.
여자친구에게 '넌 김태희 갖아'라고 할리는 없겠지만, '내가 버너 같고 갈게' 라는 실수는 종종 한다. 혹은 실패인지도 모르겠지만.
이 밖에도
종양덩어리를 들어내다 vs. 치부를 드러내다
웬일인지(어인일인지) 네가 보고 싶어 vs. 왠지(왜인지) 모르겠지만 네가 보고 싶어
병이 낫다 vs. 새끼를 낳다
얘들아 나 봐라 vs. 그 애들 좀 봐
후미진 데로 가자 vs. 시키는대로 해
와 같이 발음만 같을뿐, 생김새도 다르고 모양도 다른 쌍들을 사이좋게 번갈아가며 한데 어울려 쓰는 경우.
일부로 → 일부러
함부러 → 함부로
어의없다 → 어이없다문안한 → 무난한구지, 궂이 → 굳이복다 → 볶다썪다, 썫다 → 썩다
안녕히 가십시요 → 가십시오
와 같이 틀린 맞춤법을 철면피로 밀고 나가는 경우 등 셀 수 없이 많은 만행들이 자행되고 있으며,
소개팅에 나왔던 상대방은 -특히 여자사람들- 은 이제는 소개팅남에서 발전하여 남자친구가 된
이 사람의 평생 고질병인 맞춤법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하게 만든다.
끊임없이 말하지만, 한글자가 사람의 인격을 판단하는 증거가 되거나 인생의 행로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한글자를 갖고 분명히 찜찜해 하는 사람이 있으며,
그 찜찜함이 결국 사람에 대한 찜찜함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내가 이렇게 완벽한데, 겨우 맞춤법 때문에 나의 완벽함이 사그라들쏘냐!' - 사그라든다.
완벽하신 분이라면 맞춤법에서도 완벽해지시기를 바란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의 불치병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도록,
'이런 것 따위가 고귀한 생명체의 인격을 논할 셈이냐'하고 쏘쿨하게 넘겨버리지 말고 쪼잔하게 살펴주시기 바란다.
아찔한 그분을 만난 소개팅에서 187% 매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본문에 맞춤법 틀린 것이 있을까봐 조마조마 심장을 부여잡으며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