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규격에 맞는 삶

네다 2009. 11. 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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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럽게 "규격에  맞는 삶"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168cm/48kg, 34-24-36, 235mm.

이 모든 것이 나의 인생에서 쓸데 없는 지출을 줄여주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도 가장 큰 효과를 내게 해주는 진실로 귀중한 숫자들이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은 내가 너무나도 원망스럽고 또 밉다.

 

완벽한 몸매를 가진 이들은

청바지에 티셔츠 대충 입어도 청순미와 섹시미를 동시에 갖춘 연예인처럼 보이고,

인터넷 싸구려 1+1 수트를 사입어도 타임이나 마인에서 사입은 옷처럼 귀티나보이며,

길가다 도로 난장에서 널어놓고 파는 플랫슈즈도 대충 신어보고 '어머 이거 이쁘다. 아저씨 이거 얼마에요? 19,800원? 여기요~ 이거 가져갈게요~' 하고

사다가 운동화처럼 신으면서도 남들에게는 '너 이거 어느 해외구매대행 샵에서 질렀냐?'하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난 '키가 커야 간지 있어 보이지'하는 아집에 사로잡혀서 다른 데에는 절대 신경을 쓰지 못한 결과,

모든 수트는 2만원 상당의 수선을 거쳐야 겨우 입을 수 있게 되었고,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으면 건실한 남자처럼 보이게 되었다.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남보다 더 뛰어난 인생' '다른 사람과 차별화된 인생'을 사는데에는 그만큼의 비용이 더 들어가게 되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다른 사람과 어울릴 수 있는, 다른 사람과 조화를 이루는 인생을 추구한다면

추가비용 없이 소소하지만 알찬 맛남을 느끼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어렸을 때 적당히 놀고 말썽도 부리고,

학교 다닐때 적당히 출석일수 잘 채우고 야자 땡땡이 안치고 열공하고 반항도 해보고,

대학교 졸업할 때쯤 적당한 회사에 취직해서 과장님 눈 밖에 나지 않도록 따박따박 일하고,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서 적당한 신혼살림을 차리고 어렵겠지만 적당히 살림 꾸려나가고,

적당히 애기들 나아서 때리고 먹이고 키우고 속썩이고 웃음짓고 눈물짓고.

 

이 모든 것이 지극히 평범하지만 너무나도 바람직한 삶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야하나, 깨달았다고 해야하나, 인정하게 되었다고 해야하나.

 

누군가에게 '적당'이란 말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말,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말, Loser들이나 하는 말

이라고 생각되겠지만,

언젠가 인생에 치여, 삶에 지쳐 노곤해질 때쯤 깨달을 것이다.

그토록 거부하던 '적당'이 사실은 가장 바라던 '보람'이었다는 것을. 

 

인생의 참맛은 특별한 데 있는 게 아니니까. 그냥 조미료 같은 것이니까.

 

이제와서 후회해봤자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 알지만,

혹시라도 나중에 내가 아주 어린, 이제 막 본격적인 몸매설계, 인생설계를 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충고를 할 수 있다면 난 꼭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규격에 맞는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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