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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31223 이탈리아 로마 - 바티칸미술관 라파엘로의 방

네다 2014. 1. 21. 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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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3 맑음
이탈리아 로마 바티칸시국

 

 

바티칸 미술관 라파엘로의 방 Stanza di Raffaello

라파엘로 산치오 Raffaello Sanzio는 1483년 4월 6일 출생하여 1520년 4월 6일 사망했다. 특이하게 생몰일이 똑같다. 비범한 인물로 만들고 싶은 기록의 오류인지도 모르겠다. 이탈리아 우르비노 공국 몬테펠트로 공작의 궁정화가 조반니 산티의 아들로 태어났다. 우르비노는 문화의 중심지였고, 그의 아버지는 비록 라파엘로가 11살때 사망했지만 궁정화가였으며, 어린시절부터 그는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이끌면서 움브리노 화파의 정점에 있는 이탈리아 최고 공방에서 도제 수업을 받았다. 타고난 천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라파엘로는 확실히 천재로 길러졌다.

 

1500년경 화가로서 이미 독립한 라파엘로는 1504년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활동하던 피렌체로 건너갔다. 당시 두 거장은 피렌체 베키오 궁전에서 끝까지 결론나지 않은 벽화로 한창 대결을 하고 있었다.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에게서는 인체해부학에 대한 지식을 땄고, 레오나르도에게서는 소실점, 광원의 사용, 그림을 스프레이로 뿌린듯 현실성을 높이는 스푸마토 기법 등을 배웠다. 물론 마주앉아서 배운 것이 아니고, 어깨 너머로 흘끔흘끔 가져왔다는 뜻이다. 중간중간 돌아다니면서 오래된 예배당에서 마사초의 작품도 공부했다. 결과적으로 라파엘로의 작품은 두 거장의 장점을 모아살려 치밀하고 정교하면서도 주제전달력이 뛰어난 완성도 높은 작품이 되었다. 특기는 성모자상이다. 자애롭고 참하고 아리따운 성모와 순수하면서도 엄숙하고 어른스러운 예수의 모습은 후대 작가들의 성모자상 제작의 정석이 된다. 이후 이탈리아 전역 성당에는 라파엘로의 성모상이 퍼진다.

 

라파엘로는 동향출신 브라만테의 소개로 1508년 로마에 입성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지시에 따라 교황청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뛰어난 실력, 조직생활에 잘 맞는 온화한 성격, 수려한 외모로 남은 여생은 이미 보장된 것이나 다름 없었다. 교황은 집무실의 시뇨렐리 등 구화가들의 프레스코화를 새롭게 단장할 것을 지시했다. 라파엘로는 새롭게 단장하긴 했지만, 그 와중에도 예의바르게 자기 스승인 페루지노가 그린 구석방은 남겨둔다. 1509~1512년(추정)동안 라파엘로는 교황의 서재 인생의 작품이라 할만한 아테네 학당 School of Athens 을 완성시킨다. 1513년 첫 후원자였던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서거하고, 1514년 로마 입성을 도와준 브라만테도 죽지만, 메디치 가문 출신의 새로운 교황 레오 10세는 라파엘로를 더 좋아했다. 라파엘로는 브라만테가 마치지 못한 성베드로 성당 개축 공사 총책임자에 임명된다. 후에 라파엘로의 방으로 불리게된 콘스탄티누스 홀, 세나투라의 방, 엘리오두루스의 방, 보르고 화재의 방도 계속 작업중이었다. 라파엘로는 가장 높은 지위에 올라서 가장 활발한 작업을 해야할 때, 가장 안타깝게 죽었다. 호흡기가 좋지 않은 사람에게 로마는 결코 좋지 않은 장소였다.

 

그는 원래 자신의 미완성 유작 그리스도의 변용 Transfiguration 앞에 묻혔다. 성베드로 성당 공사 총책임자 후임으로는 미켈란젤로가 임명되었다. 여느 천재가 겪는 일이듯, 라파엘로 작품의 예술성에 대하여 수세기동안 의견이 분분했다. 미켈란젤로는 그가 선천적인 천재가 아니라 노력형이라고 하고, 벨라스케스는 그의 화풍이 구식이라고 했고, 독일 미술계는 그의 그림이 지극히 평범하다고 하고, 심지어 조각 대량생산가 빙켈만은 라파엘로가 조각에는 조금 소질이 있었지만 회화에는 그닥 소질이 없다고까지 했다.(이거 지금 조소 맞죠?) '라파엘전파 Pre Raphaellite' 는 명시적으로 라파엘이 틀렸다고 말했다. 마네는 '라파엘로의 작품을 보면 속이 메스꺼워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반대로 베르니니는 후배작가들에게 라파엘로 발뒤꿈치에라도 미치리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했고, 낭만주의 시대와 빅토리아 여왕 치세에 라파엘로의 작품은 온화하고 정성스러우며 따뜻한 작품으로 선호되었다. 무엇보다도 바티칸이 그를 사랑하고(아테네학당 입장권에서 종결ㅋㅋ) 현세인들도 그를 사랑한다. 논란의 여지가 있을까. 라파엘로가 인간으로서 아무 특징없는 존재였다면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가 또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그의 작품에 대한 평가에는, 타고난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길러진 천재성에 대한 일종의 질투심이 깃들여 있는 것은 아닐까. 어쨌든 그가 그린 초상화를 보면, 피부와 직물소재, 광원에 대한 묘사에 대해서는 트집잡을 말이 없다. 라파엘로는 진정으로 빛의 화가라는 별명과 별명이 주는 따뜻하고 명랑한 이미지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세 천재간의 사이가 어떠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누구에게나 퉁명스럽고 고집이 세고 독불장군이었던 미켈란젤로가 나머지 두명과도 잘 지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인 가운데,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매우 추종했고 미켈란젤로 역시도 능력면에서 존경했다고 한다. 라파엘로가 레오나르도를 보기 위해 피렌체에 갔으나, 레오나르도는 우연하게 미켈란젤로와의 다툼으로 피렌체를 떠나고 라파엘로는 이러한 이유로 미켈란젤로에게 악감정이 생겼다고 한다. 이러한 와중에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가 동시에 바티칸 베드로 대성당 작업에 투입되었을때, 미켈란젤로는 라파엘로에게 적대감을 갖고 있었다. 라파엘로가 당시 대성당 건축 총책임자였던 브라만테와 동향출신인으로서 브라만테의 소개로 바티칸에 입성하면서 자신과 경쟁구도가 형성된 것이 브라만테와 라파엘로의 계략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미켈란젤로 자신과는 정반대로 우수한 외모에 겉으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실제 성격도 친절하고 공손했을지도 모르나) 어디에서나 좋은 평판을 듣고 있는 라파엘로가 사실은 뒤로 호박씨를 까고, 잘난척 하고, 돈 걱정 안해본 철부지인데다가, 남의 기술만 베끼는 얍삽이(실제 라파엘로는 습득 능력이 매우 뛰어났다)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라파엘로는 라파엘로의 방(당시에는 교황 접견대기실, 집무실이었을 공간)을 작업하고, 미켈란젤로는 천지창조 작업에 들어가게 된다. 미켈란젤로가 천지창조 작업 당시 누구도 작품을 봐서는 안된다고 조건을 걸었던 데에는 아마 라파엘로에 대한 견제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재미있게도 라파엘로는 미켈란젤로가 작업을 쉬던 사이 천지창조를 볼 기회를 얻게 되고, 미켈란젤로의 인간신체에 매료되어 자신의 작품에도 미켈란젤로 인체의 분위기를 덧입힌다. 반대의 입장에서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에게 정말 악감정이 있었는지는 알길이 없다. 오히려 라파엘로가 '아테네학당'에 고뇌에 찬 미켈란젤로를 그린 것으로 보아, 미켈란젤로을 존경하거나 적어도 실력을 존중했을 것이라는 예상이 든다. 일설에 따르면 '아테네학당' 한켠에 라파엘로가 그려넣은, 피타고라스가 열심히 연구한 바를 자신의 공책에 베껴적고 있는 인물은 라파엘로가 특유의 대담하고 명랑한 천성으로 자신도 능력있는 화가임을 보여주는 예시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한다.

 

라파엘로의 방은 총 4개로 구성되어 있다.

 

1. 콘스탄티누스의 방 Stanza di Constantino

이 방에는 콘스탄티노플 전쟁이 그려져 있다. 1517년 라파엘로의 초안구상을 토대로 사후에 제자 줄리오 로마노 Giulio Romano 와 지안프란체스코 펜니 Gianfrancesco Penni 가 완성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천사의 도움으로 밀비우스다리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고, 기독교를 공인하고, 천주교로 개종하는 장면이 4개의 연작벽화로 꾸며져 있다. 4면에 그려진 그림은 십자가 형상의 출현 The Vision of the Cross / 밀비우스다리 전투 The Battle of Milvian Bridge /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진장 증정 The Donation of Constantine /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세례 The Baptism of Constantine 이다.

 

2. 엘리오두루스의 방 Stanza di Eliodoro

이 방은 교황 알현을 위한 대기실로 쓰였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기적 등 보호에 대한 내용이다. 4면에 그려진 그림은 엘리오두루스의 추방 / 볼세나 미사의 기적 / 교황 레오1세 Leo I 의 아틸라 Attila 격퇴 / 성베드로의 해방 이다. 알잘딱깔센이었던 라파엘로는 앞의 두 벽화에서 그의 (구)상사였던 교황 율리우스 2세를 그려넣고, 세번째 그림에는 (신)상사인 레오 10세를 그려넣었다.

 

2-1) 엘리오두루스의 추방 The Expulsion of Heliodorus from the Temple

엘리오두루스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성물을 훔치다가 하느님께서 보낸 기사에게 추방되었다. 그림 왼쪽에는 스위스근위병의 호위를 받아 교황 율리우스 2세가 황좌에 앉아 광경을 목격하고 있다.

 

2-2) 볼세나 미사의 기적 The Mass at Bolsena

1263년 미사에 참석한 보헤미아 성직자가 미사 도중 피를 흘리는 빵을 보고 성체변화 Transubstantiation 에 대하여 품었던 의심을 버리게 되었다. 당시 피에 젖었던 미사복은 근처 오르비에토에 보관되어 있다. 교황 율리우스 2세는 1506년 오르비에토를 방문하여 미사복에 기도하기도 했다. 제단 오른쪽에 앉아서 무릎을 꿇고 있는 교황은 쿠리아 멤버들과 함께 미사에 참석하여 기적을 목격하고 있다.

 

2-3) 레오 1세의 아틸라 격퇴 The Meeting of Leo the Great and Attila

교황 레오 1세는 유럽을 침공한 훈족 추장 아틸라의 군대를 격퇴하였다. 그림 하늘에는 성베드로와 성바오로가 칼을 들고 내려와 있다. 원래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얼굴로 그려질 예정이었던 레오 1세의 얼굴은 새로운 교황이 즉위하고, 실제 이름을 레오로 지음으로써 새로운 교황 레오 10세의 얼굴로 바뀌었다.

 

2-4) 성베드로의 해방 Deliverance of St Peter

그리스도가 보낸 천사가 투옥되어 있는 성베드로를 구출하는 모습을 그렸다. 원래 교황 율리우스 2세가 베드로 쇠사슬 성당 St Pietro in Vincoli 에 보임된적이 있었기 때문에, 교황의 이전 성직을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기적을 찬양할 겸 겸사겸사 그리게 된 것이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물론 빛의 향연이다. 달빛, 횃불빛을 압도하는 폭발적인 천사의 빛이야말로 천국 또는 천상의 빛이라고 할만하지 싶다.

 

3. 서명의 방 혹은 세냐투라의 방 Stanza di Segnatura

라파엘로의 대표적인 작품이자 이 코스의 하이라이트인 아테네학당이 있다. 서명의 방은 4개의 방중 작업이 가장 먼저 시작된 방이다. 원래 이 방은 교황의 독서실로 활용되었었는데, 점차 집무실로 변하게 되었다. 라파엘로는 4벽 꼭대기에 그려진 신학, 철학, 법학, 미학의 학문을 주제로 고전정신과 기독교정신의 조화를 묘사하기를 희망했다. 세속적이고도 종교적인 지혜, 르네상스 인본주의자들이 받아들였던 기독교 강론과 고전 그리스 철학의 조화라는 이 방의 주제는, 교황청의 중요한 문서들이 서명되고 봉인되는 방의 목적과 가장 적절하게 부합한다. 이 방에 그려진 그림은 성체논쟁, 아테네학당, 파르나소스, 기본덕목 이다.

3-1) 성체논의 Disputation of the Holy Sacrament

1508-1509년 사이 라파엘로가 끝낸 성체논쟁은 성찬식에서 신자가 받는 빵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라파엘로는 하늘과 땅으로 이어지는 교회의 모습을 그렸다.

3-2) 아테네학당 The School of Athens / Scuola di Atene

종교와 철학의 화해, 고대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와 국가의 화해를 보여준다. 교회는 삼위일체 및 사도들과 교황들을 통해 대표되며, 철학은 세 명의 철학자와 청중을 통해 대표된다. 기독교의 본산인 바티칸에 철학의 동산인 아테네를 그려넣은 것은 참신함을 넘어 말그대로 융합이자 혁명 아닐까. 어떻게 보면 교회의 존재는 철학과 과학으로부터 끊임없이 도전을 받는데 그러한 철학을 자기 집에 옮겨 담은 것은 당당한 자신감의 표현인 것 같다.

3-3) 파르나소스 언덕 The Parnassus

1509-1510년 사이 라파엘로는 파르나소스 언덕 벽화를 완성한다. 파르나소스는 그리스신화에 따르면 아폴로와 뮤즈가 지내는 시의 전당이다. 아폴로와 뮤즈들은 고대와 라파엘로 당시의 시인들로 둘러싸여 있다. 기독교의 집에 이교도의 신화라. 알쏭달쏭하다.

3-4) 기본덕목The Cardinal Virtues

기본덕목은 고대철학에서 말하는 신중 Prudence, 절제 Temperance, 용기 Fortitude 를 의미한다.

 

4. 보르고 화재의 방Fire in the Borgo

교황 레오 4세는 기도로서 화재를 진압한다. 보르고 화재의 방은 바티칸 인근 로마의 보르고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를 교황 레오 4세가 진압하기 위하여 기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방은 원래 교황 레오 10세의 음악감상을 위한 방으로 건설되고 있었다. 벽화들은 교황 레오 3세와 레오 4세때 일어났던 일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4-1) 레오 3세의 맹세 The Oath of Leo III

서기 799년 4월 교황 레오 3세는 그의 전임자 교황 하드리아누스 1세의 조카와 귀족들이 일으킨 소요사태로 인하여 파더보른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프랑크왕국 국왕 샤를마뉴가 소요를 수습하고 서기 800년 12월 23일 교황 레오 3세는 자유의지에 따른 정화의 서약을 한다. 그리고 교황 레오 3세는 크리스마스 미사에서 샤를마뉴의 대관식을 거행하는데, 이때 사람들이 로마제국의 황제라고 외친다. 이 사건으로 프랑크왕국은 기독교와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고, 비잔틴제국과의 위치 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게 되어,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본다.

 

4-2) 샤를마뉴의 대관식 The Coronation of Charlemagne

 

4-3) 오스티아 전투 The Battle of Ostia


 

 

피나코테카의 라파엘로작 <그리스도의 변용Transfiguration>.&nbsp; 빛의&nbsp;화가라는&nbsp;별명에&nbsp;걸맞게&nbsp;그림이&nbsp;정말로&nbsp;온화하고&nbsp;따뜻한&nbsp;빛을&nbsp;뿜어낸다.&nbsp;전시실에&nbsp;빛이&nbsp;별로&nbsp;강하지&nbsp;않은데&nbsp;이&nbsp;그림때문에&nbsp;전시실이&nbsp;환해진다.&nbsp;그리스도의&nbsp;변용은&nbsp;마태오&nbsp;복음서와&nbsp;마르코&nbsp;복음서를&nbsp;기초로&nbsp;한다.&nbsp;양&nbsp;옆으로&nbsp;모세와&nbsp;선지자&nbsp;엘리야가&nbsp;따르고&nbsp;있고,&nbsp;밑에서&nbsp;제자들이&nbsp;놀란&nbsp;눈으로&nbsp;그&nbsp;광경을&nbsp;보고&nbsp;있다.&nbsp;언덕&nbsp;아래에서는&nbsp;사람들이&nbsp;이를&nbsp;보고&nbsp;놀라는&nbsp;한편,&nbsp;기적을&nbsp;기다리는&nbsp;마귀들린&nbsp;아이의&nbsp;모습이&nbsp;그려져&nbsp;있다.

 

 

콘스탄티누스 방의 천장. 천장에는 이교도의 종말을 의미하듯 석상이 부서져 있다. 소스라치게 놀라운 것은, 몇백년전 사람들인데 이미 상징적인 것을 강조하는 방식이 너무 참신하는 것이다. 저 장면 자체가 지금 어느 걸그룹의 뮤직비디오에 나올 것같은 기이함과 임팩트가 있다.

 

 

엘리오두루스의 방.

 

 

추방당하는 엘리오두루스.

 

 

볼세나 미사의 기적.

 

 

천사의 빛이 강렬하다.

 

 

 

 

 

 

 

 서명의 방 아테네학당. 아테네학당 그림에 등장하는 인물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소크라테스, 알키비아데스, 에피쿠로스 까지 합쳐 모두 54명이다.

 

붉은토가를 입고 하늘의 이치를 설명하듯 손가락을 하늘로 치켜올린&nbsp;이상주의자 플라톤은&nbsp;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얼굴을 하고 있다. 옆구리에는 티마이오스 Timaeus 라는 책을 끼고 있다. 현실주의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상과 현실세계를 설명하듯 손바닥을 땅을 향하고 있다. 왼손에는 윤리학 Eticka 책을 끼고 있다.

 

 

 

 

흰옷을 입고 천구를 들고 있는 사람은 짜라투스트라, 그 앞에 지구를 들고 등을 돌린채 이야기 하고 있는 사람은 프톨레마이오스이다. 화가 소도마가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그 뒷편에서 검은 모자를 쓰고 우리를 훔쳐보고 있는 사람이 귀요미 라파엘로 이다. 이들 앞에서 유클리드가 콤파스를 들고 기하학을 연구하고 있고, 그의 옆에서 미래의 학자가 될 소년이 스승에게 배우고 있다.

 

 

사색에&nbsp; 잠겨 글을 쓰고 있는 철학자는 만물의 기원을 '불'이라 주장했던 비관적인 헤라클레이토스다. 그의 얼굴은 미켈란젤로이고, 발에는 다른 아무도 신지 않은 가죽부츠를 신었다. 라파엘로는 예의바른 사람답게 미켈란젤로의 얼굴을 모에화 해주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 작업을 할때 가죽부츠를 신었는데, 작업이 끝난후 어찌나 다리가 부었는지 부츠가 벗겨지지 않아 잘라내곤 했었다. 창작의 고통때문에 고민하고 있는 얼굴을 보면, 라파엘로가 미켈란젤로의 노력과 고통을 칭송하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오른쪽에는 디오게네스가 계단에어 기대 있다.

 

 

수학공식을 정리하는 피타고라스. 그 옆의 소년같은이가 칠판에 도형을 그려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