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사농공상의 사회이다. 조선시대부터, 갑오개혁이 이루어졌어도, 대한민국이 건국되었어도, 대한민국은 사농공상의 사회이다. 공부를 해서 관직을 얻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면 혹은 학자가 되서 위대한 학문을 이루면 최고의 인간이다. 최고의 효도이다. 농공상은 절대 선비를 이길 수 없다. 어디에 쓸지는 몰라도 일단은 배워야 하고, 많이 배워야 하고, 공부는 잘해야 한다. 우리는 선천적으로 학구열이 뛰어나다. 특히 못배웠다고 생각하는, 심지어 다른 나라에 비해 엄청 잘 배운 축인, 부모의 교육열은 상상을 허락하지 않을 정도로 강하다. 우리는 절대 선비의 길을, 학자의 길을, 관직의 길을 포기할 수 없다. 그것은 수천년, 적어도 수백년을 이어져온 혹은 우리 혈관을 타고 흐르는 우리 피의 일부를 이루고 있는 열망이다.
선비에서 도태된 사람들은 도태자이다. 이류인간이다. 최근 그나마 한발짝 양보해서 농農을 인정했다. 관직, 고위직, 경쟁, 학업, 도시에 지친 사람들을 시골로 향한다. 귀농한다. 어린시절 자신이 '자랐다고 믿는'(실제로 자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시골에서 자랐지만 농가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그들은 농가에서 태어났더라도 선비가 될 것을 명령받았고, 그렇게 노력했다.) 고향, 시골로 발걸음을 옮긴다. 자신에게 원래 농부의 피가 흐르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생명을 틔우고 키우는 과업의 신비함을 새롭게 인식한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죽은 공부를 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생명과 조우하는 것이 더 고귀한 일이라고 믿고 농업을 시작한다. 그리고 실패한다. 그리고 자신은 뭘해도 되는게 없다고 한탄한다. 그들이 실패하는 것은 그들이 운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은 농부의 자식이 아니다. 부모는 농부이지만, 그들은 선비로 자라났고 몇십년을 선비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선비가 되는데 실패했다고 해서 농부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다. 전향을 위한 새로운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여태까지 아무도 공상工商 따위는 고려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계속 공상 따위를 제쳐둔다면 우리는 절대 서구 잘사는 나라들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사농공상의 망령이 계속 판치는 한, 우리는 절대 세계 1위는 커녕 10위도 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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