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이미 나는 없었다

네다 2014. 6. 16.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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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없었다

배찬희


작게 크게 네게로 가고파

나는 소리도 없이 나리는

밤비가 되었다.


네게로 가고파

나는 자주, 알몸도 기꺼워하는

시린 바람도 되었다.


네게로 가고파

가고파, 나는 언제든

무엇이든 또 될 수 있었다.


네가 있는 곳이면, 난

천리 길도 한 걸음에 달린다는

천리마가 되었다가

네가 마시는 술이라면

나는 익은 보리 내음에도

맥없이 팍 쓰러질지언정

발간, 얼굴 부끄럼 모르고

잔을 비웠다.


그러나 항상 네게로 흐르는 내 그리움보다

네가 터놓은 물고는 늘 작고 아쉬워

자주 돌아서서 흐느끼면서도

내 흐느낌도 너만 모르게 안으로

안으로만 삼켰다.


그래, 사랑은 꽃비만 내리는 것

아니지

그래, 사랑은 준 것만큼 되돌아오는

대차대조표도 아니지

수없이 나를 다독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리운 것


나는 오늘도 무엇이 된다.

그가 즐겨 먹는 된장찌개의 두부도 되었다가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사분음표도 되었다가

그가 즐겨 바라보는 파란 하늘이 된다.

-그랬다, 사랑 때문에 이미 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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