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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나는 없었다
배찬희
작게 크게 네게로 가고파
나는 소리도 없이 나리는
밤비가 되었다.
네게로 가고파
나는 자주, 알몸도 기꺼워하는
시린 바람도 되었다.
네게로 가고파
가고파, 나는 언제든
무엇이든 또 될 수 있었다.
네가 있는 곳이면, 난
천리 길도 한 걸음에 달린다는
천리마가 되었다가
네가 마시는 술이라면
나는 익은 보리 내음에도
맥없이 팍 쓰러질지언정
발간, 얼굴 부끄럼 모르고
잔을 비웠다.
그러나 항상 네게로 흐르는 내 그리움보다
네가 터놓은 물고는 늘 작고 아쉬워
자주 돌아서서 흐느끼면서도
내 흐느낌도 너만 모르게 안으로
안으로만 삼켰다.
그래, 사랑은 꽃비만 내리는 것
아니지
그래, 사랑은 준 것만큼 되돌아오는
대차대조표도 아니지
수없이 나를 다독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그리운 것
나는 오늘도 무엇이 된다.
그가 즐겨 먹는 된장찌개의 두부도 되었다가
그가 즐겨 부르는 노래의 사분음표도 되었다가
그가 즐겨 바라보는 파란 하늘이 된다.
-그랬다, 사랑 때문에 이미 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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