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

대구미술관 <대구아티스트 : 선線 - 삶의 비용>

네다 2016. 10. 14.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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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미술관

대구아티스트

김결수, 김길후, 노상동, 박철호, 백미혜, 손성완, 이상헌, 이영석, 이태호, 천광호

선線 - 삶의 비용

http://www.daeguartmuseum.org/exhibition/pop_exhibition1.html?sid=73&gubun=1&bbs_start=


대구미술관은 지역 미술 발전을 위해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지역 출신 작가를 지원하는 전시의 일환으로, 외부 기획자 장미진이 기획한 <대구아티스트 : 선(線)–삶의 비용>展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우리 지역에서 수십 년 간 일관된 작품 활동을 매진해온 10명의 중견작가를 중심으로 회화․입체․판화․서예․설치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세계를 조명한다.

특히, 선(線)을 모티브로 심도 있게 개진해온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데, 여기서 선은 조형의 기초 요소이면서도 작가의 예술의지와 지향점에 따라 다양한 삶의 질감을 반영하기도 한 대상이며, 작가에 따라 임파선과 같은 생명의 선(腺)이 되기도 하고, 실천적 행위에 이르는 수행의 선(禪)이 되기도 한다라는 점을 내포한다.

더불어 “삶의 비용”이라는 부제를 통해 각 장르에서 수십 년간 일관되는 작가들의 조형철학을 살펴보고, 삶의 질곡과 애환을 이겨내며 치른 삶의 비용이 곧 예술의 비용이 되는 노정을 직관하고 감상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


선(線) - 삶의 비용(費用)


이 번 전시는 대구에서 활동해온 중견작가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선 작업에 초점을 두고 기획되었다. 선은 조형작업의 기초요소이면서도 작가의 예술의지(Kunstwollen)와 지향점에 따라 삶의 다양한 질감(質感)과지층(地層)을 반영한다. 선 작업이라 하면 우선 정제되고 미니멀한 추상적인 작품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여기서는 작가들의 세계관에 따라 삶의 이마쥬를 다양하게 표출하고 있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조형의 기초요소이면서도 인간적이고 근원적인 속성을 함유하고 있는 선이 때로는 임파선과 같은 생명의 선(腺)이 되기도 하고, 또한 작가에 따라서는 수행의 선(禪)과 실천적인 행위에도 이르는 점에서 ‘선’을 매개로 하여 ‘삶의 비용’을 담지하고 있는 10명의 작가들을 선정하였다. 병고에 의한 절망과 희망, 좌절, 소외, 분노, 때로는 기쁨이나 환희심 등, 인생에서 삶의 비용은 후기자본주의사회의 물질적 질량으로는 셈을 치를 수 없는 너무나 많은 것들을 포괄한다. 이들 작업은 수많은 삶의 질곡과 애환을 이겨내며 치른 삶의 비용이 곧 예술의 비용이 되는 노정을 현시한다. 특히 이 번 전시에서는 작가들의 공간해석과 작업 구상을 엿볼 수 있는 에스키스들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보다 생생하게 창작 프로세스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였다.


김결수는 남다른 시선으로 삶의 현장을 관조하면서 폐기물들에 예술가의 노동을 가미하여 개성있는 작업을 해오고 있는 작가이다. 이 번 전시에서는 철거된 옛집에서 구한 150여 개의 구들장을 겹쳐 바닥에 쌓고 나무 들보에 흰색으로 도색한 작업을 3전시실의 중앙 공간에 설치한다. 벽면에는 까치집 오브제와 나뭇가지를 엮어 엘이디 조명을 가한 작품과 함께 검은 색 아크릴과 숯가루로 집들의 실루엣을 굵은 선으로 겹쳐 그린 그림들을 나란히 선보인다. 집은 세상사, 인간사의 희로애락이 점철되어 있는 우주 한가운데의 장소성을 지닌다. 그의 작업은 자연적이고 인공적인 선들로 생명의 선(腺)을 환기시키고 있으며, 우주 속의 생명들이 엮어가는 삶의 터전으로서의 ‘주거’와 ‘둥지’의 층위를 명상하게 한다.


김길후의 회화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비서술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형상과 그 속에 각인된 마음의 행로를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한편, ‘부조적(浮彫的)인 공간감’을 느낄 정도로 물감이라는 매체의 층위를 개성적으로 구현한다. 그는 특히 망치나 못, 나이프 자국으로 인물이나 현자의 정신적 깊이를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적 사념에 대한 드로잉 및 페인팅에서 돋보이는 선들은 생명의 갈등과 환희 등을 요체로서 함축하고 있다. 나아가 현자에 대한 열망과 신념으로서의 선(禪)적인 심인(心印)을 담지하고 있다. 밑그림 없이 분방하게 마무리한 수 십 점의 드로잉들과 칠하고 지우는 공정을 거쳐 무게감과 시간성을 구현하는 그의 작품들은 회화의 여러 가능성 모색과 이미지의 표면을 넘어 명상으로 이끄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노상동은 왕희지의 대표작격인 ‘난정서’(蘭亭序)를 백 팔 번 담묵(淡墨) 초서체로 써서 바탕을 만들고 여러 과정을 거쳐 해서(楷書)의 정법(正法)을 구현한 22점의 작품을 연이어 벽면에 부착한다. 바탕을 만들기 위해 쓴 담묵체는 한 번 먹을 찍으면 그대로 아래서 위로 써 올라가 위와 아래의 명암은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그렇게 완성된 여백에는 심연의 깊이감이 차오른다. 상형문자를 기본으로 하는 한자 서예 속에는 이미 추상과 구상이 혼재하므로 포백(抱白)의 조율에 따라 조형적으로 현대미술의 근간과 만난다는 것이 작가의 신념이다. 그의 작업은 백 팔 번뇌를 글씨 쓰기로 닦아온 작가의 수행 이력과 함께 많은 삶의 비용을 치르고 도달한, 선이 선(禪)에 이르는 노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박철호는 대자연이 품고 있는 미세한 선들을 다양한 판화 기법으로 형상화하면서 생명의 선과 그에 대한 관조적 선(禪)적 사념을 보여준다. 이 번 전시에서는 비정형의 린넨 천 조각 위에 환경이나 사회적 문제를 주제로한 이미지들을 실크스크린으로 처리하고 그 위에 회화 작업을 병행한 작품들로, 벽면에 겹쳐 부착하거나 늘어뜨려서 무채색계열과 레드 계열 작품의 파노라마적인 설치가 이루어진다. 그에게 있어 물리적인 자연의 모든 부분들은 대자연의 순환적 섭리를 투영하는 물(物)이면서 정신과 영성의 암호같은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대자연의 섭리에 대한 교감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다양한 흔적으로 가시화한다. 바로 신체와 행위, 직관과 손의 사유가 깊게 각인된 것이 그의 작품세계이다.


백미혜의 작업에서 그리드의 선들은 날줄 씨줄로 얽히고 만나며 끊어지는 삶의 현장을 유비적으로 표현한다. 이를테면 만날 듯 만나지지 않는 선들과 결국 직선이 해체되는 흐린 선들의 교차 등은 우리네 삶의 인연이나 길들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자신의 시집을 분해하여 오려붙인 위에 선작업을 함으로써 또다른 의미층을 암시한다. 이 번에는 몇 시인의 시집과 함께 기억할만한 일상의 오브제를 사용하여 입체적인 그리드 작품 시리즈를 선보이는데, 이는 문학적 이마쥬와 기억의 사물들이 품고 있는 경계를 조형적 언어의 변주를 통해 가시화한 점에서 한 계기를 마련했다고 할 만하다. 삶과 은밀히 연결되어 있는 사물들은 말 이상의 말을 담고 있음을 작가는 보여준다. 반창고를 붙여 상처를 치유하듯 테이핑해간 선들의 교차는 작가가 치러낸 삶의 비용을 암시한다.


손성완은 십 년 전 안타깝게 작고한 작가로서, 한국의 미의식과 양식에 착안하여 많은 조형실험을 하였었고, 한지를 캔버스에 겹겹이 채워 입체적으로 부착함으로써 미세한 선들의 교차를 통해 삶의 다양한 층위를 표현하였다. 또한 그는 갤러리 벽면 전체를 캔버스 삼아 설치함으로써 행위의 프로세스를 포함한 특유의 선(禪)적 사유를 암시했었다. 작가가 치른 삶의 비용은 이제 수많은 한지의 갈피와 결 속에 각인되어 전한다. 그는 한국화가로서 우주의 정신을 전신(傳神)하는 경계를 화두삼아 ‘천상(遷想)’의 현대적 작업에 전념해 온 작가이다. 그는 한지의 결 갈피마다 대자연의 운률과 영혼을 실어 켜켜로 쌓아놓았고, 현색(玄色)의 깊이에서 울리는 느낌들에 감응하면서 때때로 과감하게 오방색을 풀어놓기도 했다.


이상헌은 2층 엘리베이터 전면 공간에 손을 길게 뻗치고 있는 목조각 삐에로 한 점을 설치한다. 그는 청년기에서부터 일관되게 인간 의식의 상징적 형상화 작업에 매진해온 조각가이다. 작가는 재료상의 반전, 비례의 무시와 왜곡, 삐에로상같은 인물표현으로 삶의 비용을 대체하면서 시니컬한 유머를 발생시킨다. 그가 여러 나무들의 세포 속 인자를 감득(感得)하고 읽어내어 인간의 몸체와 기억의 편린들로 번안해내는 과정은 바로 작가 자신의 몸과 정신을 대자연의 섭리에 따라 치유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이 번 전시에서 인체에 내장된 모래시계는 손에 들고 있거나 바라보아도 감각으로는 만지거나 닿을 수 없는 시간의 층위를, 그리고 거대한 손 위의 의자는 작가 자신과 모든 이들을 위해 내어주고 싶은 휴식의 자리를 상징하며, 실제로 현장에서 사람들이 앉아보도록 고안되었다.


이영석은 한국화 전공으로 수묵과 오일 바, 테이프 등을 이용해 특유의 선적 미감으로 인간에 대한 사념을 표현한다. 그는 현대인의 심리적 상황 및 실존적 인간의 내적 사유를 밀도 있는 선으로 형상화하면서 전통적인 점 획이 지니는 여러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다. 그의 작업은 초기의 발묵효과를 활용한 수묵화로부터 인간 정신의 내적 상황을 암시하는 인물 군상도를 거쳐 테이핑 작업을 병행하며 인간의 생물학적 정신적 게놈을 표현한 시기로 이어지고, 최근에는 다시 점 획의 발묵으로 선(腺)적이면서도 선(禪)적 표현의 경지에 이르고 있다. 그 동안 작가는 수 십 년 ‘인간’이라는 화두를 붙들고, 인간의 삶에 얽힌 모순과 갈등, 분노와 절망, 연민과 희망, 나아가 절대자유를 향한 구도자적 탐구를 누구보다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형상화해 왔다.


이태호는 ‘썬 큰 가든’에 지름 3m의 원형 스텐미러 구조물을 바닥에 깔고 물을 담아 위에서 물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도록 설치한다. 또한 천정에서 아래로 99개의 낚시줄을 늘어뜨려 작가의 일상생활 기물들을 매달아 자연광이 비치는 스텐미러에 반영이 되도록 하며, 관중들이 길게 짧게 늘어뜨린 기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오방색의 선인장 조각편들과 실리콘 빈 통들, 비닐봉지 속의 머리카락, 나무 젓가락, 숟가락, 파리 끈끈이, 커팅 테이프, 끌, 열쇠 꾸러미, 시계 바늘, 믹스커피 봉지 등, 작가의 삶 주변에서 모은 잡다한 기물들이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방울과 그 음향을 배경으로 하면서 새로운 감각으로 말을 건네게 된다. 이 번 작업에서 그는 대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물방울의 점과 선을 가장 일상적인 삶의 기물들과 매치시킴으로써 남다른 조형적 반추를 시도한다.


천광호는 80년대 전국 규모 실천예술단체였던 <임술년>의 창립 멤버였다. 이 번 전시에서는 가드레일과 셔터로 암시되는 80년대의 몇 작품도 함께 선보인다. 특히 80년대 연필 소묘인 가드레일과 표지판의 희미하고 낡은 화면은 시간성을 담보하면서 세월의 회한을 느끼게 한다. 최근 신작 작품들에도 경계와 금기를 상징하는 가드레일과 내려진 셔터, 표지판이 등장하는 것은 그 때의 상황이나 지금의 상황이 별반 크게 달라진 것 없다는 자조감의 표현이다. 생명이 경시된 세월호 사건 등에 대한 작가의 사회의식이 팽목항의 노란 리본들과 20미터가 넘는 회색 가드레일의 선들로 대변되고 있고, 인물들의 표정과 피에타상의 비애, 302명의 희생자 숫자가 새겨진 교통 표지판과 목각인형 등, 사실적이면서도 암시적인 회화 작업으로 표출되고 있다.


장미진(미술평론가, 대구아티스트 전시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