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
정기문
책과함께
16
유방에 맞선 흉노의 왕은 묵특이었다. 그는 명적, 즉 '소리 내며 날아가는 화살'이라는 고사성어의 주인공으로, 흉노를 유목 제국으로 성장시킨 명장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명적'을 만든 후 병사들에게 자신이 활을 쏘는 대상을 향해 다 같이 쏘라고 명령했다. 묵특은 여러 목표를 향해 계속 활을 쏘았다. 처음에 동물이나 적군을 향해 쏠 때는 병사들은 당연히 따라 쏘앗다. 그렇지만 묵특이 자신의 애마와 같은 대상을 향해 활을 쏠 때는 명령을 듣지 않았다. 그때마다 묵특은 명령을 어긴 병사들을 가차 없이 처형했다. 병사들은 묵특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게 되었고, 묵특이 그의 아버지이자 선왕인 두만을 향해 활을 쏠 때도 주저 없이 따라 했다. 그리하여 묵특은 아버지를 죽이고 선우(흉노족의 왕)가 되었다.
57
이렇듯 자동차가 발명되고 성능이 개선되고 있었지만, 20세기 전반기까지도 주요 교통수단은 여전히 마차였다. 말이 주요 이동수단이었다는 사실은 전쟁에서 분명히 확인된다. 전쟁에는 최첨단 기술이 동원되기 마련인데, 2차 세계대전떄까지도 기병을 주력 부대로 삼았던 나라가 여전히 많았다. 1939년 9월 1일 히틀러의 독일군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독일의 탱크부대를 가로막고 나선 것도 폴란드가 정예부대라고 자신했던 기병들이었다. 물론 전투 결과는 너무나 뻔했다.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 때도 말을 탄 병사들이 제법 많았다.
71
대포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포병은 정규 군대가 아니었다. 대포를 다루려면 상당한 기술과 수학적 재능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전문적인 장인들이 대포를 다루었다. 당시 일반 병사들은 그런 재능을 갖추기 힘들었고, 귀족들은 장인이 하는 일이라 하며 기피했다. 대포를 가진 장인들은 일종의 조합을 만들어놓고 계약을 통해 활동했다. 즉 왕이나 사령관이 얼마를 지불할 테니 어디에 와서 포를 몇 방 쏘아달라고 하면 돈을 받고 전투에 참가했다.
87
기독교 세력이 에스파냐를 재정복하는 과정의 초기에 기독교 지도자들은 유대인들의 재능과 자질을 알아보고 그들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카스티야의 왕, 알폰소 10세였다. 그는 1254년 살라망카에 에스파냐 최고의 대학을 세웠고, 유대인과 아랍인 지식인들을 초청했다. 초청받은 유대인 지식인들은 에스파냐 법전을 집필했고 당시 지식을 총망라하는 기록물을 만들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당시 학문 세계의 공용어였던 라틴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를 사용했다. 그들은 라틴어가 기독교의 언어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에스파냐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 즉 기독교도, 유대인, 개종자 들이 다 알아볼 수 잇는 에스파냐어를 사용했다. 그 후 200년 동안 유대인들은 에스파냐어로 성경을 읽고 주석을 달았으며 학문을 연구했다. 따라서 에스파냐에서 에스파냐어를 확립한 사람들은 유대인이었다.
208
그리스인들은 여행 중에 도저히 인간이 만들었다고 볼 수 없는 거대한 건축물을 보곤 했다. 그들은 이성으로 해명이 불가능한 위대한 건축물을 불가사의라고 불렀다. 당시 불가사의한 건축물로는 쿠푸왕의 대피라미드, 고대 바빌론의 공중정원,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 에페소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할리카르나소스의 마우솔루스 왕 능묘, 로도스의 거상, 알렉산드리아의 파로스 등대가 으뜸으로 꼽혔다.
209
아르테미스 신전이 유명해지자 이상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타났다. 헤로스트라토스는 무슨 일을 해서든 후세에 이름을 남기고 싶었다. 기원전 356년 10월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렀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크게 훼손되었고, 헤로스트라토스는 붙잡혀 재판을 받고 사형당했다. 재판정에서 그는 이름을 남기고 싶어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에페소스인들은 그의 이름을 기록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의 소원을 무산시키려 했지만, 로마의 건축가 스트라보가 그의 이름을 후대에 전했다.
이렇게 사악한 짓을 해서라도 이름을 남기려는 사람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군주론>을 남긴 마키아벨리는 "찬양할 만한 일을 해서 남보다 두드러지기가 어려운 사람들 중 일부는 수치스러운 행동을 해서라도 명성을 쟁취하려고 한다!"라고 말하여, 많은 인간의 욕망 깊은 곳에 그런 욕구가 꿈틀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아르테미스 신전 방화 사건에는 꼭 짚고 넘어갈 게 있다. 고대 세계에서 신전은 원래 신이 사는 집이다. 아르테미스 신전에는 아르테미스 신이 거주한다고 생각하여 많은 사람이 그녀에게 복을 빌거나 병의 완치를 기원했다. 그렇다면 그 못된 사람이 불을 지를 때 아르테미스 여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자기 집도 지키지 못했을까? 전승에 따르면 아르테미스 여신은 처녀 신이지만 출산을 돕는 일을 맡고 있엇다. 이 관념은 매우 강력해서 100년 전까지도 출산을 앞둔 그리스 여인들은 이 여신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순산을 기도했다. 신전이 불타던 밤, 인류 역사상 위대한 영웅이 될 알렉산드로스가 태어나게 예정되어 있었다. 아르테미스는 자신의 신전을 지키는 것보다 알렉산드로스의 출산을 돕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잠시 신전을 떠나 알렉산드로스의 출산을 도왔다.
326
로마가 세계를 장악하기 전 동방 지역에서는 '첫째 살해' 관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동방인들의 종교적 인식 때문이었다. 고대 동방인들의 생각에 따르면 첫째 아이는 신들이 여자에게 에너지를 불어넣은 결과 생긴다. 따라서 첫째 아이는 신의 소생이며 그 아이를 신에게 바침으로써 신이 써버린 에너지를 보충해주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신은 힘이 없어져 인간을 돌볼 수 없게 된다.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할 때 하느님이 이집트인들의 첫째를 죽였다는 이야기나,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했다는 이야기는 이런 고대 동방인들의 의식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333
고대 유대인은 인생을 일곱 단계에 비유했다. 한 살 때는 임금과 같다. 모든 사람이 좋은 낯으로 그를 껴안고 입을 맞추낟. 두세 살 때는 돼지와 같다. 흙탕물에도 ㄷ손을 넣고 아무렇게나 뛰어논다. 열 살은 염소와 같다. 늘 웃고 떠들고 장난치며 뛰논다. 열여덟 살은 말과 같다. 덩치는 큰데 지혜는 익지 않아 덮어놓고 힘자랑을 하려 들고, 우는 말처럼 치장하고 이성을 그리워한다. 혼인하면 당나귀와 같다. 아내를 위해 온갖 일을 마다하지 않는 짐꾼이 된다. 자식을 낳으면 개와 같다. 자식들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얼굴이 개처럼 사나워져 돈을 번다. 늙은이는 원숭이와 같다. 지능이 떨어지고 몸놀림이 느려져 주변 사람들의 놀림감이나 구경거리가 된다.
339
배나 체리를 훔쳤던 청소년들은 또래 집단이었고, 그런 '사소한' 범죄 행위는 집단의 유대감을 공고히 하는 수단이었다. 그들은 같이 어울려서 사회가 금지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즉 범죄나 일탈 행위를 함으로써 자신들이 공동 운명체이며, 다른 누구보다도 친한 존재임을 확인한다. 청소년들은 간절히 친구를 원하고, 혹시나 친구에게 따돌림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며, 친구의 관심을 얻기 위해 그리고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어른들은 청소년기에 친구가 갖는 의미를 인정하지 않거나 과소평가하곤 한다. 그들이 청소년을 어른들이 정한 지식과 규범을 배워야 하는 피동적인 존재로만 보기 때문이다. 즉 어른의 입장에서 청소년을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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