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

네다 2019. 2. 2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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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호실로 가다To Room Nineteen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 김승욱

문예출판사


279 19호실로 가다

두 사람은 새로 마련한 멋진 아파트에서 2년 동안 살면서 인기 좋은 젊은 부부로서 파티를 열기도 하고 남의 파티에 참석하기도 했다. 그러다 수전이 임신하면서 직장을 그만두었고, 두 사람은 리치먼드에 주택을 구입했다. 첫째는 아들, 둘째는 딸, 그 다음에 아들딸 쌍둥이를 낳은 것은 정말이지 이 부부다운 일이었다. 모든 것이 매끄럽고 흠잡을 데 없이 굴러갔다. 누구라도 스스로 선택할 수만 있다면 선택하고 싶은 삶이었다. 사람들은 이 두 사람이 실제로 이런 삶을 선택했다고 보았다. 두 사람이 언제나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옳은 길만을 선택하는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균형 잡히고 현명한 가정생활을 누리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본 것이다.


290 19호실로 가다

"이건 모두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야. 처음에 나는 어른이 된 뒤 12년 동안 일을 하면서 나만의 인생을 살았어. 그리고 결혼했지. 처음 임신한 순간부터 나는, 말하자면 나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겼어. 아이들에게. 그 후 12년 동안 나는 단 한 순간도 혼자였던 적이 없어. 나만의 시간이 없었어. 그러니까 이제 다시 나 자신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해. 그뿐이야." 

...한 학기가 끝날 무렵, 수전은 자신이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느기고 있음을 이해했다. 첫째, 집에 아이들이 없는 동안, 그녀는 아이들이 항상 옆에 있을 때보다 더욱더 바쁘게 지냈다는(일부러 자신을 바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남몰래 경악하며 당황했다. 둘째, 이제 앞으로 5주 동안 집에 아이들이 가득할 테니 그녀가 혼자 있을 수 없게 됐다는 사실에 분개하고 있었다.


296

방학이 또 다가왔다. 이번에는 거의 두 달이나 되는 방학이었다. 수전은 의식적으로 차분하고 점잖은 태도를 유지하느라 미쳐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욕실 문을 걸어 잠그고 들어앉아서, 욕조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 앉히려고 애썼다. 아니면 평소에 비어 있는 여분의 방으로 올라갈 때도 있었다. 그녀가 거기에 있을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 엄마"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려도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며 침묵을 지켰다. 혼자서 정원 끝까지 갈 때도 있었다. 거기서 그녀는 천천히 흘러가는 갈색 강을 바라보았다. 강물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자신의 존재 속으로, 혈관 속으로 강을 받아들였다.

그러고 나서 수전은 다시 아내이제 엄마가 되어 식구들에게 돌아왔다. 미소를 잃지 않고 책임감 있는 모습으로. 기운찬 네 아이와 남편이 그녀의 피부를 고통스럽게 짓누르고, 뇌를 손으로 눌러대는 것 같았다.


305

그런데 당신 눈에서 히스테리의 기운이 번들거리고 있네요. 오로지 외로움을 간신히 참고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타나는 눈빛이죠. 그걸 보니, 제 삶이 곧 당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 그대로라는 걸 알겠어요. 하지만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그런 삶을 전혀 원하지 않아요. 원하신다면 제 삶을 가져가세요, 미스 타운센드. 저는 당신처럼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