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해의 마지막
김연수
문학동네
30
"외로움을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하니까 그럴 수밖에. 외로워봐야 육친의 따스함을 아는 법인데, 이 사회는 늘 기쁘고 즐겁고 벅찬 상태만 노래하라고 하지. 그게 아니면 분노하고 증오하고 저주해야 하고. 어쨌든 늘 조증의 상태로 지내야만 하니 외로움이 뭔지 고독이 뭔지 알지 못하겠지. 요전번에는 종로의 한 화랑에서 그림을 봤는데, 무슨 제철소인가 어딘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그려놓았더군. 그런데 육중한 철근을 멘 노동자들이 모두 웃고 있더라고.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 슬픔을 모르는 인간, 고독할 겨를이 없는 인간, 그게 바로 당이 원하는 새로운 사회주의 인간형인가봐. 그러니 나도 웃을 수 밖에."
..."이건 마치 항상 기뻐하라고 윽박지르는 기둥서방 앞에 서 있는 억지춘향의 꼴이 아니겠나. 그렇게 억지로 조증의 상태를 만든다고 해서 개조가 이뤄질까? 인간의 실존이란 물과 같은 것이고, 그것은 으름이라서 인연과 조건에 따라 때로는 냇물이 되고 강물이 되며 때로는 호수와 폭포수가 되는 것인데, 그 모두를 하나로 뭉뚱그려 늘 기뻐하라, 벅찬 인간이 되어라, 투쟁하라, 하면 그게 가능할까?"
..."이런 상황이라면 결국 사람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지. '시바이(芝居, 연극, 속임수)'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게 개조의 본질이 아닐까 싶어. 시바이를 할 수 있따면 남고, 못한다면 떠나라. 결국 남는 자들은 모두 시바이를 할 수밖에 없을 텐데, 모두가 시바이를 하게 되면 그건 시바이가 아니라 현실이 되겠지. 새로운 사회는 이렇게 만들어진다네. 이런 세상에서는 글을 쓴다는 것도 마찬가지야. 자기를 속일 수 없다면 글을 쓰면 되는 거지."
"그렇게 양자택일만 남아 있는 것일까? 다른 길은 없을까?"
..."우리의 불행은 거기서 시작됐지. 제3의 길이란 없다는 것."
"그럼 지금 자네는 시바이를 하고 있는 건가?"
..."내게는 번역이 시바이의 길이네. 몇 년 전까지는 자네도 마찬가지였잖아. 그런데 왜 그랬어? 왜 다시 시를 쓰기 시작한 거야? 난 언제나 그게 궁금했어."
..."나는 자네가 시를 쓰지 않았으면 했네. 그 언제였던가, 자네와 소식이 끊어지고 우리가 저마다 시대의 광풍에 휩쓸려 낙엽처럼 이리 구르고 저리 뒹굴던 시절에 자네가 내게 맡긴 시가 있었지.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나는 아직도 그 시를 기억하네. 전선을 따라 끌려다니며 그 시에 많이 의탁했다네. 그럴 때도 나는 자네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모르고 지내던 무정한 친구였지. 이제는 자네가 자네의 시보다 더 불행해지지 않았으면 해. 더이상 나를 무정한 친구로 만들지 않았으면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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