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미드나잇 라이브러리Midnight Library

네다 2021. 8. 13.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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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라이브러리Midnight Library

매트 헤이그Matt Haig / 노진선

인플루엔셜

 

 

이 도서관에 들어온 이후로 지금까지 노라가 선택했던 삶은 사실 모두 다른 사람의 꿈이었다.

... 어쩌면 그녀를 위한 완벽한 삶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어딘가에 틀림없이 살 가치가 있는 인생이 있을 것이다. 진정으로 살아볼 가치가 있는 인생을 발견하려면 더 큰 그물을 던져야 한다는 걸 노라는 깨달았다.

 

 

어떤 삶에서는 하나뿐인 친구 집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어떤 삶에서는 몬트리올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어떤 삶에서는 온종일 모르는 사람들과 트위터에서 논쟁하다가 결국에는 대부분의 트윗을 '그게 최선이냐?'라고 썼다. 내심 그게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깨달으면서.

어떤 삶에서는 SNS 계정이 없었다.

어떤 삶에서는 술을 한 번도 마신 적이 없었다.

어떤 삶에서는 체스 챔피언이었고,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방문 중이었다.

어떤 삶에서는 와가의 먼 친척과 결혼해서 매 순간 자신의 삶을 미워했다.

어떤 삶에서는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노자와 루미의 명언만 적혀 있었다.

어떤 삶에서는 세 번째 결혼 생활 중이었는데 이미 남편에게 싫증이 났다.

어떤 삶에서는 채식만 하는 역도 선수였다.

어떤 삶에서는 남미를 여행하다가 칠레에서 지진을 겪었다.

어떤 삶에서는 베키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좋은 일이 일어날 때마다 "아 완전 신나"라고 말했다.

어떤 삶에서는 코르시카섬 해변에서 다이빙하다가 위고를 다시 만났고, 그들은 바닷가 술집에서 함께 술을 마시며 양자역학에 대해 이야기햇다. 그러나 위고가 한창 말하던 중에 그 삶을 떠나버렸고, 그래서 노라는 그녀의 이름도 기억 못 하는 멍한 위고에게 혼자 더들어댔다.

어떤 삶에서는 사람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고, 어떤 삶에서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다. 어떤 삶에서는 부자였고, 어떤 삶에서는 가난했다. 어떤 삶에서는 건강했고, 어떤 삶에서는 계단만 올라가도 숨이 헐떡거렸다. 어떤 삶에서는 남자친구가 있었고, 어떤 삶에서는 혼자였고, 많은 삶에서는 그 중간이었다. 어떤 삶에서는 엄마였지만 대다수의 삶에서는 아니었다.

노라는 록스타, 올림픽 국가대표, 음악 선생, 초등학교 선생, 교수, CEO, 비서, 셰프, 빙하학자, 기후학자, 곡예사, 나무 심는 사람, 회계 담당자, 미용사, 개 산책 전문가, 회사원, 소프트웨어 개발자, 호텔 접수원, 호텔 청소부, 정치가, 변호가, 가게에서 물건 훔치는 좀도둑, 해양보호단체 대표, (또) 매장 직원, 웨이트리스, 현장 관리직, 유리 공예가, 그 외 천 가지 다른 직업을 거쳣다. 매번 자동차, 버스, 페리,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힘들게 통근했다. 이메일을 받고 또 받고 또 받았다. 입 냄새가 지독한 53세 직장 상사가 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다리를 만지고, 자신의 페니스를 찍은 사진을 보내기도 했다. 거짓말을 하는 동료도 있었고, 그녀를 사랑하는 동료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그녀에게 완전히 무관심했다. 노라는 여러 삶에서 일하지 않기를 선택했고, 어떤 삶에서는 일하고 싶어 했지만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어떤 삶에서는 유리 천장을 완전히 박살 냈고, 어떤 삶에서는 거기에 순순히 굴복했다. 자기 수준보다 지나치게 높은 혹은 지나치게 떨어지는 일을 하기도 했다. 엄청 잘 자기도 하고, 제대로 못 자기도 했다. 어떤 삶에서는 항우울제를 먹었고, 어떤 삶에서는 머리가 아파도 진통제조차 먹지 않았다. 어던 삶에서는 몸이 건강한데도 늘 건강을 걱정했고, 어떤 살멩서는 심하게 아프면서 늘 건강을 걱정했으며, 어떤 삶에서는 전혀 건강을 걱정하지 않았다. 어떤 삶에서는 만성피로에 시달렸고, 어떤 삶에서는 암에 걸렸으며, 어떤 삶에서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로 허리디스크와 갈비뼈 골절로 후유증을 겪었다.

한마디로 숱하게 많은 삶이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삶을 살면서 노라는 웃고 울고, 평온하고 무서웠으며,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감정을 다 느꼈다.

처음에는 더 많은 삶을 경험할수록 다른 삶으로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듯 했다. 도서관이 무너질 뻔 하거나 완전히 사라질 뻔한 위험에 처한 적도 없었다. 삶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 조명은 한 번도 깜짝거리지 않았다. 그녀가 삶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이르러서 이제 나쁜 경험이 있으면 좋은 경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인 듯 했다. 노라는 자신이 삶을 끝내려고 했던 이유가 불행해서가 아니었음을 깨달았다.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우울증의 기본이며 두려움과 절망의 차이점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지하실로 들어가게 되어 문이 닫힐까 봐 걱정하는 것이다. 반면 절망은 문이 닫히고 잠겨버린 뒤에 느끼는 감정이다.

아지만 새로운 삶을 살 때마다 상상력이 점점 더 발달하면서 저 비유 속 문이 조금씩 열린다는 걸 알게 되었다. 때로는 새로운 삶에 채 1분도 머무르지 않았고, 때로는 며칠 혹은 몇 주씩 머무르기도 했다. 더 많은 삶을 살면 살수록 어디에서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마침내 노라는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모르게 되었다.

 

 

'죽고 싶지 않아.'

노라는 더 노력해야 했다. 늘 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삶을 원해야 했다. 이 도서관이 그녀의 일부이듯, 다른 인생도 그녀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른 삶에서 느꼈던 감정을 모두 느끼지 못할 수는 있지만 그녀에게는 능력이 있었다. ... 그들은 모두 그녀였다. 그녀는 그 모든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고, 한때는 그 사실이 우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자극이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는 마음먹고 노력하면 자신이 해낼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가 살았던 삶에는 나름대로 타당성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오빠가 살아 있었고, 이지도 살아 있었고, 노라는 리오가 문제아로 자라지 않게 도와주엇다. 가끔은 덫처럼 느껴지는 것이 사실은 그저 마음의 속임수일 수 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포도밭을 소유하거나 캘리포니아 석양을 봐야 할 필요는 없다. 심지어 넓은 집과 완벽한 가정도 필요치 않다. 그저 잠재력만 있으면 된다. 

 

 

"포기하지 마라! 감히 포기할 생각은 하지도 마. 노라 시드!"

노라는 죽고 싶지 않았다. 또한 자신의 것이 아닌 삶은 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삶은 엉망진창에 고군분투일지라도 그녀의 것이었다. 그조차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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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가 몸부림치며 돌을 밀어내고 자신을 누르는 돌의 무게에 저항하는 동안 시간은 재깍재깍 흘렀다. 노라는 폐가 불타는 듯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힘을 잔뜩 준 후에야 간신히 돌 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바닥을 더듬거려 먼지를 잔뜩 뒤집어쓴 만년필을 찾아내 연기를 뚫고 열한 번째 통로로 달려갔다.

거기 있었다.

불에 타지 않은 유일한 책. 완벽한 초록색을 유지한 채 그대로 있었다.

노라는 열기에 움찔거리며 책등 위에 조심스럽게 검지를 걸어 선반에서 책을 꺼냈다. 그러고는 늘 하던 대로 책을 펼치고 첫 장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유일한 차이점은 첫 장이 없다는 것이었다. 책 전체에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가지 백지였다. 다른 책처럼 이것 역시 그녀의 미래였다. 하지만 다른 책과 달리 이 책의 미래는 아직 적혀 있지 않았다.

 

 

노라는 책에 적기 시작했다. 노라는 살고 싶었다.

그렇게 쓴 후 잠시 기다렸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노라는 예전에 엘름 부인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하고 싶다'는 흥미로운 말이지. 그 말은 결핍을 의미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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