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대변동Upheaval

네다 2021. 8. 13.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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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Upheaval : Turning Points for Nations in Crisis

제레드 다이아몬드Jared Diamond / 강주헌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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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는 소련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놀랄 정도로 완강히 저항했다. 소련이 국경선 전체를 전선으로 확대한 까닭에 카렐라야지협 너머의 만네르헤임 선도 당연히 전선이 되었고, 핀란드 국토에서 가장 좁은 지역을 습격해 '핀란드의 허리를 끊으려는 시도'도 소련의 공격계획에 포함되었다. 소련 탱크가 만네르헤임 선을 공격하자 핀란드인은 대전차포가 부족한 현실을 보완하려고 '몰로토프 칵테일'을 발명해냈다. 이 칵테일은 휘발유와 여러 화학물질을 혼합한 폭발물로 소련 탱크에 심각한 손상을 입히기에 충분했다. 또 용감한 병사들은 개인용 참호에 숨어 탱크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무한궤도에 통나무를 쑤셔 넣고 탱크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탱크가 멈추면 저돌적인 병사는 탱크에 달려가 소총을 포신이나 관측구에 넣고 총격을 가해 탱크 안의 소련군을 쏘아 죽였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핀란드군 대전차병의 사망률은 70%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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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키비-케코넨 원칙'이라고 알려진 정책으로, 그 정책을 35년 동안 창안하고 다듬고 엄격히 시행한 후 대통령 유호 파시키비Juho Paasikivi와 우르호 케코넨Urho Kekkonen의 이름을 딴 것이다. 파시키비-케코넨 원칙은 러시아를 무시하던 핀란드의 1930년 정책을 뒤집은 것이었다. 파시키비와 케코넨은 그때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었다. 핀란드가 조그맣고 약한 국가라는 사실은 그들에게 견디기 힘들었지만 엄연한 현실이었고, 서방 세계로부터 어떤 도움도 기대할 수 없었다. 따라서 핀란드는 소련의 관점을 이해하고 항상 염두에 두어야 했다. 최고위층부터 말단 관리가지 모든 계급의 소련 정부 관리와 끊임없이 대화해야 해꼬, 핀란드는 약속을 지키고 협정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걸 입증하면서 소련의 신뢰를 얻고 유지해야 했다. 따라서 위협받지 안흔 강력한 민주국가라면 결코 양도할 수 없는 국권이라 생각했을 경제적 독립과 공개적으로 발언하는 표현의 자유를 부분적으로 희생하더라도 소련의 신뢰를 유지하기 위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 케코넨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파시키비와 자신의 정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핀란드 외교정책의 기본 과제는 핀란드의 지정학적 환경을 지배하는 이해관계에 핀란드의 실존을 맞추는 것이다. ... 핀란드 외교정책은 예방 외교이다. 예방 외교의 과제는 위험이 코앞에 닥치기 전에 미리 감지해서 그 위험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다. 가급적이면 눈에 띄지 않게! ... 입장을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 되는 작은 국가는 군사와 정치 분야의 향후 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미리미리 정확히 인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국가라면 당연히 독립 독행해야 한다. 전쟁을 통해 우리는 이런 점에서 값비싼 교훈을 얻었다. ... 작은 국가는 외교정책의 해법에 공감이든 반감이든 감성을 뒤섞을 여유가 전혀 없다는 것도 경험적으로 배웠다. 현실적인 외교정책은 국제정치를 결정하는 요인들, 즉 국가 간 권력 관계와 국익에 대한 자각에 기초해야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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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930년대 아시아 본토에 주둔한 일본군 지휘관은 나치 독일을 제외하고 해외 경험이 없는 젊고 성급한 장교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은 도쿄에 있는 노련한 지도자들의 명령에 순순히 따르지 않았다. 그 젊고 고집스러운 장교들은 미국의 산업력과군사력에 대한 직접경험이 없었으며, 일본의 잠재적인 적국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식도 없었다. 그들은 미국인의 심리를 이해하지 못한 채 미국을 싸움에 끼어들지 않는 장사꾼 나라라고 착각했다.

... 따라서 일본이 무모하게 제2차 세계대전을 시작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지만, 1930년대의 젊은 군사 지도자들에게 정직하고 현실적이며 신중한 자기평가에 필요한 역사적 경험과 지식이 부족했다는 것이 부분적인 이유였다. 그 결과는 일본에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를 상대를 파괴하기에 충분한 핵무기를 보유했기 때문에 '합리적으로 계획된rationally planned' 유일한 공격법은 상대의 보복 역량까지 완전히 없앨 수 있는 기습이었다. 따라서 미국과 소련은 그런 현실에 대응해 핵무기를 발사하는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했고, 그 목적은 자신들의 보복 역량이 순식간에 제거되는 위험을 피하기 위함이었다.

예컨대 미국은 세 가지 발사 시스템을 갖추었다. 적의 공격을 견뎌낼 수 있는 강력한 방어 설비를 갖춘 지하 미사일 격납고, 잠수함, 핵무기를 탑재한 폭격기 편대이다. 따라서 소련이 기습 공격으로 지하 격납고를 빠짐없이 파괴하더라도 미국은 폭격기와 잠수함을 동원해 즉각 대응함으로써 소련을 파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위장된 격납고, 강력한 방어 시설을 갖춘 지하 격납고,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정밀한 타격 능력을 갖춘 미사일이라야 맞힐 수 있는 작은 격납고까지 아주 다양한 격납고를 보유하고 있어 소련이 이 모든 것을 빠짐없이 파괴한다는 전제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 결과,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는 '상호 확증 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 능력을 갖추었고, 따라서 어느 쪽도 기습 공격을 시행하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경쟁국의 핵 능력을 파괴하겠다는 목표는 유혹적이었지만, 미국과 소련 양측의 군사전략가들은 기습 공격이 무모한 짓이라는 걸 분명히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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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웨스턴대학교의 벤저민 존스Benjamin Jones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벤저민 올켄Benjamin Olken이 이 방법론을 적용해 두 건의 탁월한 논문을 공동으로 발표했다.

첫 논문에서 존스와 올켄은 이런 의문을 제기했다. "지도자가 재직 중 사망하지 않은 때의 경제성장률과 재직 중 자연사한 때의 경제성장률은 어떻게 다를까?" 이 비교는 리더십의 변화를 연구하는 자연 실험일 수 있다. ... 존스와 올켄은 1945년부터 2000년까지 전 세계에서 국가 지도자가 재임 중 자연사한 57건의 사례를 찾아냈다. 대부분 사망 원인은 심장마비나 암이었고, 항공기 추락 사고가 몇 건 있었으며 익사와 낙마, 화재와 다리 골절로 인한 사망이 각각 한 건씩 있었다. 이런 사고도 엄격히 따지면 무작위로 일어난 하나의 작은 혼란에 불과하다. ... 존스와 올켄의 조사에 따르면 지도자가 사망하지 않은 이후 무작위로 선택한 시기보다 지도자가 자연사한 때의 경제성장률이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더 크게 변한 것으로 나타났다. 많은 사례에서 입증된 결론에 따르면 지도자는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경향을 띤다.

두 번째 논문에서 존스와 올켄은 "지도자가 자연사하지 않고 암살당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의문을 연구했다. 물론 암살은 결코 무작위적 사건이라 할 수 없다. 암살은 특정 상황(예를 들면 낮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시민이 불만을 가질 때)에서 시도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존스와 올켄은 암살이 성공한 경우와 실패한 경우를 비교했다. 암살의 성패는 무작위적 차이에 불과하다. 국가의 정치 상황은 암살 시도 횟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암살자의 표적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기 때문이다.

... 두 논문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민주적인 지도자보다 독재적인 지도자의 죽음이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 또 입법부와 정당의 견제를 받는 독재자보다 권력 행사에서 어떤 제약도 받지 않는 독재자의 죽음이 미치는 영향이 더 컸다. 이런 결과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한 권력을 지닌 강력한 지도자가 제한적 권력만을 지닌 지도자보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더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