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도살장

네다 2008. 6. 7. 0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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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경은 기자 eun@chosun.com
정육업계와 정치인의 부적절한 거래


도살장
게일 A. 아이스니츠 지음ㅣ박산호 옮김ㅣ시공사ㅣ336쪽ㅣ1만3000원

 

미국산 육류의 정체를 폭로한 충격고발서가 나왔다. 인도주의적 축산협회(Humane Farming Association)의 수석 조사관이자 동물보호운동가인 저자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도살장 내부까지 잠복해 들어가 완성한 고발서가 바로 이 책 《도살장》이다.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 아이스니츠(Eisnitz). "소들이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고 온몸이 절단됩니다. 살아서 발길질을 해대는 이 동물들의 껍질을 벗겨야 하는 도살장 직원들도 심각한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녀는 제보자를 만나 미국 전역에 있는 도살장에서 이러한 일들이 실제 벌어지고 있음을 확인하고 조사를 시작한다. "매일 몸통이 바닥에 떨어지는데 회사에서 그 몸통을 다시 작업 라인에 걸기 전에 다듬거나 씻지도 않고 그대로 걸어놓는다. 바닥은 피, 기름, 배설물, 농양에서 나온 고름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상태이다. 이 중 많은 오염물질이 고압 분사기 덕분에 고기로 들어가게 된다."

 

저자는 도살장 직원들과 관련 공무원들을 어렵게 만나 인터뷰를 하고, 도살장에 몰래 들어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을 카메라에 담는다. 위생도 엉망이다. "벌레들이 살판 난 거죠. 쥐새끼들이 들끓고 2인치나 되는 바퀴벌레들이 날뜁니다. 창자를 손질하는 테이블에 오줌이 흥건히 배어 있는데 종종 고기에 이 오줌이 묻어요."

 

각종 병원균과 오염물질에 노출된 채 생산된 육류는 치명적 위험을 안고 시중에 유통된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장에서, 집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가족과 함께한 외식 자리에서 햄버거와 스테이크를 먹은 아이들이 O157:H7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각종 합병증에 걸려 쓰러지고 목숨을 잃는다.

 

이 모든 상황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정육업계의 로비, 개인적 이익을 좇는 정치인과 관료들의 은밀한 거래가 빚어낸 종합적 참극"이다. 1900년대 초반 가축 사육장과 도살장의 충격적 위생상태가 문제되자 루즈벨트 대통령이 법령을 제정했다. 하지만 정육 업계와 긴밀한 유대관계를 지닌 레이건과 부시 행정부 시절을 기점으로 도살장에 대한 규제와 검역이 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 책은 11년 전 미국에서 출간됐다. 저자는 한국 독자를 위해 새로 쓴 머리말에서 '현재까지 수백만 마리의 소, 돼지, 양, 염소들이 불법적으로 잔인하게 도살되고 있다"고 썼다.

 

원제 Slaughter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