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첫경험

네다 2008. 6. 7.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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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태훈 기자 scoop87@chosun.com
"바보 같은 자식, 넌 연애를 할 줄 몰라"

첫경험
김종광 장편소설|열림원|356쪽|1만원

 

이 장편은 1971년생으로 1990년 대학에 들어간 청년 곰탱이 좌충우돌하며 보낸 20대 청년 시절의 기록이다. 중편 《71년생 다인이》(2002)에서 90학번들 이야기를 쓴 바 있는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대학 초년생활, 군입대, 농활, 막노동과 당구장 아르바이트 등 71년생 90학번들이 경험한 삶 속으로 더욱 깊이 파고들어간다. 그는 "다인이를 통해 말하긴 했지만 아직 우리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다는 미련이 늘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신입생인 90학번 곰탱의 대학생활은 선배들을 따라 등록금 투쟁 대열에 합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얼떨결에 본관까지 점령하게 된 곰탱은 고백한다. '학생들이 나가란다고 직원들이 정말 나갈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13쪽) 이때부터 그는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듯한 대학초년생 시기를 경험하게 된다. 철야농성 한다기에 역시 진지하게 참여했지만, 밤이 되자 기숙사생 다 빠지고 여학생도 빠져 만만한 문학과 남학생들만 3일 내내 농성장을 지켰다. 그 후 "민자당 박살낸다"는 가투에도 참여했지만 길이 막혀 분통이 터진 운전자들에게 '쌍욕'이나 먹는다.

곰탱은 조금씩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데모를 가면 밥을 얻어먹을 수 있었고, 전경들과 종일 다투다 보니 뭔가 큰 일을 했다는 만족감도 맛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 심심하지가 않았다. 투쟁의 신심도 없이 그러고 다닌다는 것이 곰탱을 괴롭게 했다.'(26쪽)

민주화 한다며 실제로는 권위주의적 행태를 보이는 운동권들의 모순도 눈에 들어온다. '놀라운 집단몰입을 예전에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전대협 의장이 구국의 영웅처럼 멋지게 등장한 순간, 오만여 명의 학생들은 열광했고 기쁨의 통곡을 했고 환희로 미칠 듯했다.'(30쪽)

 

김종광은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다루지만, 특유의 입담과 해학으로 독자를 웃음바다로 끌고 들어가곤 한다. 늘 곧이곧대로인 곰탱이 여자친구와 씨름을 하는 장면도 웃지 않고 읽을 수 없다. '곰탱은 활짝꽃을 자꾸만 쓰러뜨렸다. 안다리 걸기, 앞무릎 치기, 배지기. 정신없이 넘어져대다가 활짝꽃은 울음을 터뜨렸다. 바보 같은 자식, 넌 연애를 할 줄 몰라.'(66쪽) 농활은 또 어떤가. 학생들은 신성한 마음으로 농사일을 돕는데 농부들의 반응은 딴판이다. '주인들은 그 많은 논 중에 논 하나 결딴 난다고 뭔 대수냐. 미국쌀 들여온다고 생난리인데, 그까짓 쌀이 많이 나든 적게 나든 뭔 상관이냐(…)'(88쪽)

 

군 입대 후 의경이 된 곰탱 눈 앞에 시위를 주도하는 다인이 나타난다. "고은 시인이 《만인보》를 쓴 것처럼, 나는 소설로 내가 알고 있는 71년생들의 삶을 하나하나 기록할 생각입니다." 작가는 "다음 소설은 2000년대를 살아가는 71년생 90학번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며 "그때는 곰탱이 조연으로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