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일본의 평화운동과 민족주의

네다 2008. 6. 1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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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일본의 빗나간 추억… 被爆은 면죄부인가
일본의 평화운동과 민족주의(The Victim as Hero: Ideologies of Peace and National Identity in Postwar Japan)
James J. Orr 지음|University of Hawaii Press|271쪽|20달러
임지현 한양대 사학과 교수

 

다시 뜨거운 여름이 돌아왔다. 한반도의 여름은 어김없이 찾아오는 역사 논쟁 때문에 더 뜨겁다. 해방 63주년이자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는 올 여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한반도든 일본 열도든 식민지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탈식민·전후 세대가 이미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지만, 현해탄을 배회하는 식민지와 전쟁의 망령은 참으로 끈질기다.

 

21세기 동북아시아의 미래가 아직도 반세기 이전의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식민지 지배와 '15년 전쟁' 시기 일본군의 잔학행위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 사과일 것이다. 일본 우익의 몰염치한 민족주의적 압력이 흔히 그 정치적 배후로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문제를 일본 우익의 존재로 환원시키는 이러한 해석은 너무 순진하다. 문제는 훨씬 복잡하지 않은가 한다. 좌냐 우냐 하는 정치적 입장을 넘어서, 일본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만들어내는 사회·정치·문화적 매트릭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일본 사회의 집단적 기억의 매트릭스를 찬찬히 뜯어보면, 다소 뜻밖의 의식구조를 발견하게 된다. 피해자의식 혹은 희생자의식이 그것이다. 일본 식민주의와 15년 침략전쟁의 피해자인 동아시아 민중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아무리 의식의 세계에서라지만, 어떻게 가해자가 피해자가 된단 말인가?

 

미국 버크넬대 동아시아학과 교수인 저자에 따르면, 보수 자민당의 역대 수상들부터 공산당에 이르기까지 일본에서는 누구나 '유일한 피폭국(被爆國)'이라는 슬로건을 외친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의 피해를 입은 나라가 일본이라는 뜻이다. 이 슬로건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가 원폭의 피해자가 된 역사적 맥락이 삭제되어 있다. 마치 태풍이나 쓰나미 등의 자연재해처럼 느닷없이 원자폭탄의 재앙이 닥친 것이다.

 

1954년 3월 1일 일본의 참치잡이 어선이 비키니 섬에서 실시된 수폭 실험의 방사능 낙진에 오염되고, 그 해 9월 그 후유증으로 무선사가 죽으면서 본격화된 일본의 반핵 평화운동 역시 '희생자의식'에서 출발했다. '유일한 피폭국'의 슬로건 아래, 가해자의 기억은 점점 엷어져 갔다.

 

미 공군의 소이탄 폭격과 원자폭탄, 《요코이야기》에서 잘 묘사된 만주와 한반도에서 귀환한 민간인 피난민들의 고통과 애환, 전시 통제경제 아래 배고픔의 개인적 기억들과 맞물리면서 일본 평화운동의 '희생자의식'은 점차 공감대를 넓혀 갔다.

 

연합군 점령당국은 일본 민간인들을 군부 지도부와 떼어 놓기 위해 평범한 일본인들도 군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인상을 조장했다. 특히 '대동아전쟁'의 대안으로 점령 당국이 선호한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는 아시아의 이웃들에 대한 일본의 침략 대신에 태평양 전선에서 일본인들이 겪은 고통을 일본인들의 집단기억에 각인시키는 데 기여했다. '태평양전쟁'이라는 용어 대신에 '15년 전쟁'에 대한 저자의 선호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일본의 좌파들 역시 냉전시기 미일안보조약을 반대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일본인들은 군국주의나 재군비와 관련이 없는 희생자로 묘사할 수밖에 없었다. 우파는 우파대로 군국주의와 자민당은 무관하며, 우파 역시 희생자였다는 논리로 전쟁책임으로부터 도망갔다. 이처럼 '희생자의식'은 연합군 점령당국, 일본의 좌파와 우파 모두가 공유하는 기억의 코드였다.

 

동경 재판은 소수의 전범들에게 전쟁책임을 전가함으로써, 전쟁기계에 참가한 평범한 일본인들이 전쟁책임으로부터 벗어나는 계기였다. 특히 좌우 연합전선으로 평화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최초의 원자폭탄 피해자인 일본국은 정의롭고 무고한 피해자라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이 잘 보여주듯이, 히로시마는 일본이 전쟁의 무고한 희생자임을 웅변하는 상징이 되었다.

 

평화운동의 성장과 더불어 1960년대 일본의 역사교과서들은 평범한 일본인들 역시 다른 아시아 민중들과 마찬가지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자였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일본인들이 희생자로 묘사되는 것은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가득 찬 소설이나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맥락에 따라 개별 일본인의 잔학행위가 묘사되기도 했지만, 서사의 도덕적 줄기는 희생자로서의 일본인이었던 것이다.

 

1960년대 일본의 경제부흥이 제 궤도에 오르고 민족주의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강화되면서, 전쟁 피해자에 대한 국가의 보상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면, 희생자의 신화가 이미 '정치적 자산'이 된 것이다. 급기야는 전몰자들뿐 아니라, 만주와 한반도에서 귀환한 귀국동포들과 지주들의 빼앗긴 자산까지도 보상하는 조치가 취해지기도 했다. 수사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재정적인 측면에서도 희생자들은 영웅이 된 것이다. '참회'와 '속죄'에 대한 무성한 수사에도 불구하고, 영웅이 된 이 희생자들에게서 식민지 지배와 '15년 전쟁'의 과거에 대한 고뇌 어린 성찰과 고통 받은 아시아의 이웃들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기대하기란 어려운 것이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사과할 수는 있지만, 같은 피해자끼리 무슨 사과가 필요하단 말인가!

 

뜨거운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후 일본 사회의 집단적 기억을 지배한 '희생자의식'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해체가 필요한 여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