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그린스펀 버블

네다 2008. 6. 2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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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기천 논설위원 kckim@chosun.com
버블 심각하지 않다고? 그린스펀, 당신이 틀렸어!
그린스펀 버블
윌리엄 플렉켄스타인·프레드릭 쉬핸 지음
김태훈 옮김|한스미디어|224쪽|1만3500원

 

1996년 12월 앨런 그린스펀(Greenspan)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당시 주가가 지나치게 오르고 있는 데 대해 '비이성적 과열상태'라고 경고했다. 며칠 뒤 연방공개시장위원회 회의에서 로렌스 린지 FRB 이사는 "1997년은 비이성적 과열상태가 나타나기 아주 좋은 때가 될 것"이라며 FRB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그린스펀은 "내가 또 연설을 하면 되지요"라고 가볍게 받아넘겼고, 회의 참석자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 에피소드는 그린스펀이 일반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주식 버블을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당연히 거품을 제거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오히려 "주가 급등은 기술혁신으로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라는 식의 발언으로 버블을 부추기는 경우가 잦았다.

 

주식 버블이 터진 뒤 나타난 부동산 버블에 대해서도 그린스펀은 잘못된 판단을 했다. 부동산 시장이 달아오르기 시작한 2002년 그린스펀은 의회에서 "부동산 시장에는 버블이 형성될 여지가 적다"며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댔다. "주식시장의 연간 회전율은 100%가 넘지만 부동산 시장의 경우는 10%를 넘지 않는다. 부동산 시장은 주식 시장보다 차익 매매 기회도 훨씬 적다. 그래서 투기 열풍이 부는 일이 드물다." 물론 현실은 그린스펀의 생각과는 정반대로 갔다.
 
《그린스펀 버블》은 주식과 부동산 버블에 대해 그린스펀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바로 그린스펀의 잘못된 통화정책이 버블을 일으켰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린스펀 버블'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린스펀이 너무 자주 저금리 정책을 편 데 있다. 그로 인해 시중에 돈이 넘쳐나게 됐고, 그 돈이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서 잇따라 버블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린스펀은 마에스트로(거장)가 아니라 미국을 금융위기로 몰아넣은 주범'이라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연방 공개시장위원회 회의록과 의회 청문회 발언 등 구체적인 자료와 증거를 들이대며 '그린스펀 신화'를 송두리째 허물고 있다. 아시아 외환위기가 남미와 러시아로 번져가고, 롱텀캐피탈매니지먼트 파산 사태로 금융시장이 흔들리던 당시 상황을 무시하고 있어 너무 인색한 평가라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역사상 최고의 FRB 의장으로 추앙받았던 그린스펀의 명성에는 상당한 거품이 끼어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 거품을 뺀 뒤에 드러난 그린스펀의 모습은 연민을 느끼게 할 정도로 왜소해 보인다.

 

원제 Greenspan's Bubbl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