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네다 2008. 8. 4.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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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연합뉴스
버틀러-스피박이 말하는 민족국가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 출간

 

세계화가 속도를 내고 있는 시점에서 ’민족 국가’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현대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주디스 버틀러 미 버클리대 비교문학과 교수와 인도 출신의 탈식민주의 이론가인 가야트리 스피박 미 컬럼비아대 영문과 교수는 최근 번역 출간된 ’누가 민족국가를 노래하는가’(산책자 펴냄)를 통해 이러한 문제에 천착한다.

탁월한 이 두 여성 이론가는 그들의 선배 여성 철학자인 한나 아렌트의 저작을 중심으로 민족국가의 병폐를 논한다.

버틀러에 따르면 민족국가(nation-state)는 국가의 설립자체가 민족적 소수집단을 지속적으로 추방하는 것과 구조적으로 긴밀하게 얽혀있다.

민족(nation)과 국가(state) 사이에 있는 하이픈은 “하나의 쇠사슬”처럼 연결돼 있으며 이방인에 대한 ’배제’라는 “권력의 작동방식을 보여준다”고 버틀러는 말한다.

다시 말해 민족국가의 기반이 되는 민족을 발명하기 위해 민족 내부의 이질성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민족국가 개념의 한 축이기에 국가가 이방인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한다는 것.

그 배제의 방식은 국가내에서 이방인들의 활동에 제한을 가하는 ’봉쇄’에서부터 그들을 아예 법망의 사각지대로 몰아세우는 ’추방’까지 다양하다..

이 때문에 아렌트는 “아무리 내부적으로 그럴듯해 보여도 민족적 동질성을 내세우는 그 어떤 주장도 의심해야한다”고 강조하고, 버틀러도 이 같은 입장에 지지를 표명한다.

아렌트의 생각에 동조하기로는 스피박도 마찬가지다. 그는 민족국가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비판적 지역주의’가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비판적 지역주의는 민족주의를 배격한다는 점에서 세계시민주의와 상통한다.

하지만 탈식민지 이론가답게 스피박이 유럽중심주의에 기반한 유럽연합(EU)과 같은 공동체를 지지한다는 건 아니다. EU가 신자유주의나 강대국들의 헤게모니 쟁탈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주장하는 비판적 지역주의는 본질적인 문화와 같은 정체성에 기대지 않고 국가의 재분배, 복지 기능을 지역공동체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것을 말한다.

스피박과 버틀러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권리의 신장에 대해서도 공감한다. 특히 제22차 세계철학대회(30-8월5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버틀러는 한 발짝 더 나간다.

그는 “집회의 자유를 얻지 못한 불법이민자들이 거리에 자유롭게 모이는 상태”를 ’모순된 자유’라고 설명하면서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의 구현을 위해 시위라는 방식은 매우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자유와 평등의 실현을 가로막는 권위에 대항하여 자유를 행사하고 평등을 주장하는 행동은 자유와 평등이 현재 생각되고 있는 방식을 넘어서서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과 당위성을 보여줍니다. 새로운 어딘가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우리는 이 모순에 의지하고, 이를 드러내야 하며, 이와함께 작업해야 합니다.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66쪽)

주해연 옮김. 140쪽. 1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