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조선일보Books] 리치스탄

네다 2008. 8. 4.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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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Books | 김기철 기자 kichul@chosun.com
자가용 비행기·고급 요트… '신흥부자의 나라'를 파고들다
리치스탄
로버트 프랭크 지음|권성희 옮김|더난출판|352쪽|1만4000원

 

개인용 제트기 인테리어업체 대표인 에릭 로스는 2006년 특별한 부탁을 받았다. 챌린저 604를 구입한 고객이 객실 변기를 악어 가죽으로 꾸며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로스는 플로리다주에서 악어가죽 두 벌을 8000달러에 구입해 변기 좌석에 붙였다. 객실 바닥엔 실크와 울을 손으로 짠 태국산(産) 양탄자를 깔았다.

미국의 개인용 제트기 시장은 요즘 활황이다. 걸프스트림을 하나 사려면 우선 줄부터 서야 한다. 제트기 구매금액도 1995년 33억 달러에서 2005년 130억 달러로 뛰어올랐다. 1990년대 들어 급증한 신흥부자들 덕분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통계에 따르면, 자산 100만 달러 이상을 가진 가구는 1995년 377만에서 2004년 905만으로 늘었다. 1000만 달러 이상 가구도 1995년 23만에서 53만으로 뛰어올랐다. 기술주 버블이 꺼지고 9·11 테러가 발생한 이후에도 백만장자는 계속 늘어났다. 미국 역사상 이렇게 빨리 부자가 늘어난 적은 없다고 한다.
 
이들은 수천만 달러짜리 대저택에 살면서 32만 달러짜리 롤스로이스 팬텀을 굴리고, 실내 체육관과 수영장, 헬리콥터 이착륙장까지 갖춘 호화 요트로 여행을 즐긴다. 〈월스트리트 저널〉 최초의 '부자 담당기자'인 로버트 프랭크(Frank)는 미국 신흥부자들의 나라, '리치스탄'을 편견 없이, 세밀히 들여다본다.

콜로라도 주 덴버에 있는 스타키 집사양성소에는 1년에 네 번씩 8주짜리 집사 교육 프로그램을 받기 위해 미국 전역에서 지원자가 몰려든다. 수업료도 1만2000달러나 된다. 이들은 프랑스식 커프스가 달린 와이셔츠를 몇 초 만에 빳빳하게 다리는 법, 프랑스 와인 샤르도네와 방목해 키운 닭으로 만든 요리를 잘 어울리게 대접하는 법을 배운다. 졸업생 초봉은 연 8만~12만 달러 수준이다. 이들은 요리사와 수영장 수질관리인, 조경사, 애완견 조련사 등을 관리하는 '가사매니저' 역을 맡는다. 구인 요청이 물밀듯 밀려든다고 했다.

리치스탄의 특징은 갑작스레 엄청난 재산을 쌓아 올린 이들이 많다는 점이다. 《부와 민주주의》를 쓴 경제평론가 케빈 필립스(Phillips)는 신흥부자들이 급증한 것은 신기술, 금융투기의 증가, 시장자유주의와 부자에 대한 정부의 옹호 등이 어우러진 결과라고 했다. 1980년대, 특히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 세계적으로 돈이 넘치면서 투자할 곳을 찾아 헤매는 유동성 과잉 현상이 큰 역할을 했다. 벤처 캐피탈은 기업가들이 회사를 쉽게 설립할 수 있도록 돈을 댔고, 회사를 세운 뒤에는 주식 시장과 사모펀드, 헤지펀드를 통해 단시간에 현금을 쥘 수 있게 됐다. 기업 임원들도 스톡옵션을 행사해서 목돈을 챙겼다.

리치스탄 사람들은 중산층 출신으로 상류층에 진입했고, 하루에 18시간씩 일하는 이들도 많다. 요트와 제트기에 각종 통신기기를 갖춰놓고 지중해를 떠다니거나 대서양 위를 날면서도 일을 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현재 가지고 있는 것보다 최소한 두 배는 더 가져야 안전하다고 느낀다는 사실이다. 1000만 달러를 가진 사람도 2000만 달러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식이다.

리치스탄 부자들의 소비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등 전체 경제에 이익이 된다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이들의 소비 수준을 모방하려는 평범한 소비자들이 빚더미에 올라 미국을 점점 더 깊은 부채의 수렁에 빠져들게 한다든지, 신자유주의 경제가 빚어낸 양극화형 부자들의 부적절한 타락이라는 비판도 따갑다.

이 책은 자선파티와 사치스러운 휴가, 명품 구입 등 리치스탄 사람들의 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덕분에 흥미 유발에는 성공하고 있다. 요트가 정박한 해안가를 어슬렁거리고, 페라리 매장을 배회하면서 신흥부자들과 부동산 중개인, 제트기 중개인, 휴양지 관리인들을 만나 꼼꼼하게 취재한 덕분이다.

저자는 부자들이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권력을 가지고 사회 갈등을 해소하는 데 앞장설 수 있다고 기대한다. 카네기의 말로 책은 마무리된다. "우리는 이상적인 공동체를 가질 것이다. 그곳에서는 소수의 사람들이 소유하고 있는 필요 이상의 남는 자산이 인류 전체의 도약을 위해 훨씬 더 강력한 힘으로 사용될 것이다."

원제 Richistan: A Journey Through the American Wealth Boom and the Lives of the New Ri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