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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131221 이탈리아 로마 - 캄피돌리오 광장

네다 2014. 1. 16.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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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21 맑음
이탈리아 로마

 

캄피돌리오 광장 Piazza del Campidoglio

캄피돌리오 언덕은 로마인들이 상대적으로 나중에 진출한 언덕이다. 가장 높은 신인 유피테르(유노, 미네르바와 함께) 를 모신 신전이 있던 언덕이었다.

 

캄피돌리오 언덕에는 캄피돌리오 광장이 들어서있다. 중앙에 면한 건물은 원래 원로원 건물이었다. 지금은 로마 시청(팔라쪼 세나토리오Palazzo Senatorio) 으로 쓰인다. 양옆으로 캄피돌리오 미술관(팔라쪼 누오보Palazzo Nuovo), 콘세르바토리 미술관(팔라쪼 콘세르바토리Palazzo Conservatory)이 위치해 있다. 이 3개의 건물은 완전한 사각형 배치가 아니라 투시효과의 조화를 위하여 바깥쪽에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넓어지는 사다리꼴로 배치되어 있다. 팔로 광장을 감싸는 형상이다. 시청사 앞면에는 분수가 있으며, 로마 여신 미네르바를 중심으로 테베레강과 나일강의 신이 조각되어 있다. 광장에는 5현제 중 한 명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모작이 있다. 진품은 캄피돌리오 미술관 내에 있다. 애초에는 전체 도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대리석 본체만 남아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 등을 집필한 유명한 황제이나, 기독교 박해가 극심했다. 원칙대로라면 중세 기독교인들이 파괴했어야 했으나, 기독교인들이 이 기마상을 기독교를 공인하고 기진장을 상납한 콘스탄티누스 1세 황제의 기마상으로 오인하고 보존했다. 아이러니하게 기독교를 가장 탄압했던 황제가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자랑스럽게 여겨져 살아남았다. 1538년 교황 바오로 3세의 지시로, 기마상은 라테라노 광장에서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이동하였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미켈란젤로의 1536년 구상을 바탕으로 1546년 완성되었다. 당시 교황 바오로 3세는 1538년 즉위할 로마황제 샤를 5세에게 새로운 로마의 심볼로 어필하고 싶어서, 미켈란젤로에게 로마의 위대한 유적을 재발견하면서 새로운 시민공간을 창조해달라고 의뢰했다. 미켈란젤로는 포로 로마노에 등을 지고,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캄피돌리오 언덕에 광장을 조성할 계획을 세웠다. 세 건물로 둘러싸인 공간은 직사각형이었고, 미켈란젤로는 이 공간과 진입로를 구상했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무엇보다도 광장 바닥에 새겨진 비밀과 광장을 출입하는 계단으로 유명하다. 지상에서 광장 바닥을 보면 흰 선밖에 보이지 않는다. 가끔씩 꼭지점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공중에서 광장 바닥을 보면 꽃이 보인다. 다이아몬드 형태의 꽃잎을 타원으로 감싸고 있다. 각 선은 직선이기 때문에 평면에서는 구사할 수 없고, 광장 중앙을 주변부보다 약간 높이고 주변부로 갈수록 선을 얇게해서 그림을 완성했다. 광장을 출입하는 계단 코르도나타Cordonata는 위쪽으로 올라갈수록 폭이 넓어진다. 이렇게 함으로써 아래 있는 사람에게 계단은 원근법과 소실점을 잃고 가깝게 느껴진다. 계단 한칸한칸 자체는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폭이 넓은데, 이는 말을 타고 계단을 오르려했던 최초의 의뢰자 교황 바오로 3세의 명에 따라 계산된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스스로 말하기를 "나의 작품들은 천한 인간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신께 바치는 정성이다." 라고 했다. 피에타도 그렇고 캄피돌리오 광장도 그렇고 지상에서는 진정한 면모를 알 수 없다. 공중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알 수 있다. 그런데 현세인들은 구글어스를 통해서 그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신에게 바쳤던 미켈란젤로의 정성을 후세인들이 받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이것을 예상했을까. 아니면 옛날에는 신이라고 여겨졌던 것에게 점점 인간이 다가가게 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Monumento di Vittorio Emmanuele II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과거 이탈리아 피에몬테, 사보이아, 사르데냐 왕국의 2대 국왕이자, 통일 이탈리아의 초대 국왕이다. 1860년 가리발디가 남이탈리아 정복을 완료하자, 이탈리아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866년 오스트리아로부터 베네토주, 1871년 프랑스로부터 로마를 반환 병합하여 완전한 통일이탈리아를 구축하였다. 1878년 사망했다. 국부, 성실왕으로 불리웠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은 1885년 주제페 사코니가 설계하여, 1911년 완성되었다. 건물 전체가 하얀색 대리석으로 덮혀 있으며, 코린트식 기둥, 광대한 계단, 날개달린 승리의 여신 조각상 두개가 인상적이다. 비토리오 국왕의 청동 기마상이 가운데에서 중심을 잡고 있으며, 건물에는 이탈리아 통일 박물관과 무명용사 무덤, 꺼지지 않는 불이 있다. 꺼지지 않는 불이 안 꺼지진 않았다.

 

하얀데다가 크기까지 해서 매우 잘 보이는 기념관이며, 최초에 건립되었을때 로마인들은 이 오만방자한 건물을 매우 싫어했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 속에는 내실이 없다고 웨딩케이크 라고 불렀다. 미국인들은 타자기라고 부르기도 했다. 기념관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캄피돌리오 언덕 일부와 중세풍의 마을 하나를 완전 초토화 했기 때문에, 건립시에 논란이 많았다. 이탈리아의 전범 베니토 무솔리니는 포로로마노를 깔아뭉개는 대로를 깔고, 이 베네치아 궁전을 거처로 삼고, 베네치아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서 많은 연설을 했었다.
 

 

 

구글맵에서 본 캄피돌리오 광장. 사다리꼴 모양의 광장과, 그 안의 꽃, 사다리꼴 형태의 계단을 확인할 수 있다.

 

 

 

 

 

테베레강 신의 조각.

 

 

 

콘세르바토리 미술관(팔라쪼 콘세르바토리).

 

 

 

중앙건물 로마시청사(팔라쪼 세나토레) 조각상 분수. 가운데 조각상이 미네르바이다.

 

 

 

미네르바의 조각상.

 

 

 

나일강 신의 조각.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

 

 

 

광장으로 진입하는 계단 코르도나타.

 

 

 

아래쪽에서 보면 소실점이 없다. 높이 차이가 별로 없어보인다.

 

 

광장 한켠에 마련된 내티비티Nativity.

 

 

 

 

 

 

 

 

 

 

 

 

 

 

 

 

 

 

 

 

 

 

 

 

캄피돌리오 언덕 아래 건물 2층에 있는 카페 테라스에서 본 로마 전경. 카페에서 스탠딩으로&nbsp;에스프레소를 먹고 테라스로 나온다.

 

 

Chiesa di San Carlo ai&nbsp;Catinari(좌), Chiesa di San Giuliano dei Fiamminghi(우) 뒤로 보이는 성베드로 대성당

 

 

 

 

 

 

 

 

 

로마 반원형 극장인 마르첼로 극장 Teatro Marcello 의 일부 유적과&nbsp;Tempio di Apollo Sosiano. 마르첼로 극장은 지금 극장 역할을 못하고,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유적에서 집짓고 사는 로마인의 위엄.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뒷편.

 

 

 

캄피돌리오 광장 아래쪽에 있는 카페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