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22 맑음
이탈리아 폼페이
자전거나라 남부환상투어
폼페이Pompeii
자전거나라 남부환상투어는 산타마리아마조레 성당 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 앞에서 출발한다. 산타마리아마조레 성당은 떼르미니역 24번 플랫폼 쪽에서 떼르미니역을 등지고 3블럭 가면 있다. 0610에 고려민박에서 해주신 아침식사를 하고 0650 버스 탑승. 일찍 갔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버스 거의 꽉 차고 기사님 오른편은 커녕 왼편에도 수두룩 했다. 폼페이까지 가는길이 3시간 정도 걸렸는데, 출발 1시간 정도 후에 중간에 휴게소에서 한번 내렸다. 이곳 휴게소에서는 꼭 화장실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 휴게소에 슈퍼에서 그날 흡입할 포켓커피와 물을 쟁여놓는 것도 좋다. 포켓커피는 이탈리아 특산품으로 커피가 든 초콜렛이다. 보통 18개들이가 5-6 유로 내외이다. 떼르미니역 1번 출구쪽 슈퍼가 가장 싸다고 한다. 포켓커피는 가히 한국인이라면 누구든지 태어나서 처음 맛보고, 죽을때까지 생각나는 맛을 가졌다고 봐도 좋다. 누텔라에 버금간다고까진 못하지만 나름 중독성 있다. 아무튼 가이드님 설명 덕분에 언제 왔는지 모르게 폼페이에 도착했다.
폼페이는 중개무역을 통해 성장하고 있던 항구도시이자 로마 상류계급의 보석같은 휴양도시였다. 기원전 89년 로마에 귀속된 이후, 로마 도시계획이 철저하게 이식된 도시였다. 이미 기원후 63년 2월 대지진이 발생한 적이 있었지만, 도시는 재건되었다. 화산폭발 직전에도 화산은 심상치 않아, 일부 폼페이 시민은 외곽지역으로 대피하였다. 한편에서는 불의 신 불카누스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위해 성대한 제사를 올리고 있었다. 기원후 79년 8월 24일 정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연안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였다. 아침부터 역삼각형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정오가 되자 거대한 폭발과 함께 검은 구름이 분출되면서 화산이 분화하였다. 화산은 화산재와 화산암을 뿜어내면서 인근 도시로 쏟아져내렸다. 폼페이, 헤르쿨라네움, 오프론티스 및 캄파티아 지역을 따라 항구도시 미세눔과 나폴리까지 지진이 감지되고 구름띠가 퍼졌다. 나폴리 남동부 폼페이는 이 화산폭발로 폭망했다. 하늘에서 흙과 돌비가 엄청나게 쏟아져내려 순식간에 폼페이를 뒤덮었다. 폼페이 시민들은 화산에서 날아온 돌비에 맞거나, 지상을 뒤덮은 고온가스와 열구름에 질식하거나, 뜨거운 열에 타죽었다. 당시 폼페이 인구 10퍼센트인 2천여명이 죽었다. 미세눔에 거주하던 로마 지중해 함대사령관 대플리니우스는 화산활동의 심각성을 보고받고, 폼페이로 향하던 항해중 질식사 했다. 그의 조카 소플리니우스는 다행히 학업때문에 따라가지 않아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소플리니우스는 역사가 타키투스에게 베수비오 화산폭발에 대해 2통의 편지를 보낸다. 당시 로마황제 티투스는 곧바로 구제조치를 취하기 위하여 신속하게 구조팀을 급파했으나, 구조팀이 당도했을때 이미 폼페이는 3층 높이 화산재 밑으로 가라앉은 후였다. 구조팀은 평평한 화산재 위에서 폼페이의 흔적을 찾기 위해 헤매었으나, 실패했다. 폼페이는 그들의 발 보다 6, 7미터 아래에 있었다.
1592년 옛 폼페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운하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건물과 회화 작품들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유적발굴은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1748년 이탈리아를 지배하고 있던 프랑스 부르봉 왕조가 폼페이 발굴을 시작하였으나, 이는 약탈이지 발굴이 아니었다. 고가의 출토품만이 발굴되었을뿐, 나머지는 사장되었고, 모자이크, 벽화 등 미술품들은 충분한 조사 없이 프랑스 왕궁으로 전달되었다.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본격적으로 이탈리아 국민 역사의식 고양을 위한 폼페이 발굴 및 복원이 시작되었다. 통일 이탈리아 초대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는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을 발굴대장으로 임명하고, 조직적인 발굴을 지시했다. 폼페이는 겨우 구획정리와 본격적인 수리 및 보존이 시작되었다. 발굴단은 유적이 층층이 쌓여있는 빈공간에 의문점을 갖고 석고를 부어넣어 당시 죽은 사람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과학적인 방법을 동원하기도 했다. 현재 전시되고 있는 화석은 실제 사람 뼈나 잔해가 아니라 석고이다. 석고로 재현한 형상은 폐에 가득찬 유독가스로 인하여 괴로워 하며 공중을 허우적대는 사람, 머리를 무릎 사이에 박고 두손으로 머리를 감싸쥔 사람, 영문을 모른채 괴로움에 휩싸여 온몸이 뒤틀린 개 등으로 당시 위급하고 절망적이던 현장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후로 폼페이 발굴은 지속되어 현재는 도시의 약 80퍼센트가 발굴되었다. 발굴된 유물은 주로 나폴리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폼페이가 특이한 점은 로마의 도시계획을 그대로 이식했으며, 로마인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유적이라는 점이다. 로마에도 포로로마노가 있지만, 폼페이의 광장은 당시의 도시 모습을 매우 근접하게 재현한다. 폼페이는 한변이 약 2킬로미터에 이르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도시 서쪽에는 광장이 있고, 그 주변으로 신전, 시장, 관공서가 모여있다. 도시를 잇는 도로들은 포장이 되어 있으며, 차도가 인도보다 낮게 건설되어 구분이 명확하다. 차도 양쪽에 있는 인도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도 있다. 차도는 검은 색이지만, 밤에는 건물 벽에 횃불을 꽂고 불빛을 비출수 있는 흰돌을 사이사이 박아 현재의 도로등과 같은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와 사거리에는 공동수도 및 각 가정으로 물을 보내는 수도관 시설이 발견되었다. 공중목욕탕, 체육관, 극장 및 1만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원형 경기장도 발굴되었다. 제과점 화덕에 불에 구운 빵 화석, 술집 테이블 위에 작은 술잔이 그대로 남아있어 급작스런 화산폭발에 아무 대처할 수 없었던 폼페이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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