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

오래된 합격수기

네다 2014. 5. 23. 1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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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조차도 믿을 수 없는 꿈같은 이야기이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기분이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나보다 더 실력좋은 사람, 더 훌륭한 사람을 제치고 붙었다는 것이 미안하고도 씁쓸하지만 사실이다. 매 차시가 끝날 때마다 '이것이 끝일까'하고 치떨리게 걱정했지만 절대 끝나지 않은, 가슴이 벅차오르는 사실이다. 아직도 이게 사실일까 궁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 물러서고 싶지 않은 사실이다.

 

1.

스키장에 가면 '주걱'이 있다. 리프트를 타기가 창피할 정도로 낮은 언덕을 올라갈 때 주걱같이 생긴 도구를 손수 잡고 따라 올라가는 셀프 리프팅 기구이다. 주걱이 몇개 달려있는 줄이 곤도라를 타고 언덕 위아래를 왕복하면 내가 그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잽싸게 주걱을 낚아채서 끌려올라가는 것이다. 주걱을 타는 것은 쉽지 않다. 기다리고 있다가 잽싸게 낚아챔과 동시에 팔에 힘을 주고 보드를 일자로 유지해야 유연하게 올라가는데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몸에는 힘을 줌과 동시에 머리 속으로는 수백가지의 포즈를 계획해야 한다. 나는 주걱을 대박 못탄다, 전혀 못탔다. 말그대로 수십번을 시도했지만 한번도 성공못했다. 머리가 딸려서인지 몸이 딸려서인지 한번도 주걱을 제대로 타 본 적이 없다. 기다리고 있노라면 몇 분 혹은 몇 초만에 한 번씩 주걱이 온다. 하지만 그 동안에 내가 죽을 정도로 긴장을 하고 머리가 터질 정도로 철저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주걱타기는 불가능하다. 완벽하게 잘 잡았다 싶은 순간에도 어느 순간 삐끗하면서 놓친다. 계속 놓치다보면 오기가 생겨서 무조건 잡고 본다. 이렇게 하다가 어깨 나가는 줄 알았다. 철저하게 준비하고도 끌려 올라가는 것은 어려운데 무조건 잡다가는 다치기 십상이다. 어쨌든 주걱타기는 타이밍에 맞춰서 머리와 몸이 동시에 닳아빠지는 고난도의 활동임에 틀림없다.

 

합격은 주걱타기와 같다. 인생의 기회는 삼세번이라지만, 설마 그것보다는 많을 것이다. 어쨌든 기회는 올 수 있고, 올 것이다. 하지만 그 동안에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고, 죽을 만큼 머리를 쓰지 않으면 기회를 타는 것은 쉽지 않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사람이나 심심풀이로 잡아보는 사람이 주걱을 탈 확률은, 타고난 사람 아니고서야 거의 제로이다. 주걱타기는 그야말로 머리도 아니고 몸도 아닌 마음으로 간절히 원해야 할 수 있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선천적으로 주걱을 잘 타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죽도록 연습해도 평생 못 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이라면 꾸준히 노력한다면 주걱을 탈 확률은 점점 더 높아지는 것이다. 타고난 재능이 좋아서 혹은 운이 좋아서 쉽게 합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재능 혹은 운의 문제로 합격이 너무나 어려운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극단의 경우를 떠나면, 일반적인 '팔자'를 가진 사람은 노력할수록 합격할 확률은 높아지는 것이다. 보통의 우리는 팔자가 센 사람들이 아니다. 일반인이라면 일단은 노력하고 보는 게 현명한 것 아닐까. 노력하고서도 떨어질 수는 있어도 노력하지 않고서 붙을 수는 없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 이 말이 정답이다.

 

2.

올해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써놨다. '낮은 곳에 임해서 높은 곳을 바라보자' 새삼 내가 기특해진다. 욕심부리지 않았구나(적어도 나의 사고방식으로는) 인생에서 열렬히 원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일지도 모른다. 그저 되는대로 살지 하는 마음가짐은 바람직한 젊은이의 모습이 아니다. 흘러가는대로 나를 맡기는 것은 무모한 일이다.

그렇지 않다. 남들에게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스스로를 자책할 필요는 없다. 사람은 누구나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것이다. 너무나 바라지만 말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너무나 바라기 때문에 아무 말도 못하는 사람도 있다. '너무 쉽게 해냈다'라는 말은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어떤 일을 해내는 데에는 동일한 피와 땀과 눈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피땀과 눈물이 남에게 얼마나 보이느냐 안 보이느냐의 문제이다.

 

3.

성공의 보상은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희망일 것이다. '네가 성공하니까 내가 기쁘다'라는 말은 내가 들은 말 중에 최고의 선물이다. 이런 말을 들으면 쉬고 싶은 마음도 놀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자꾸자꾸 성공하고 싶고 자꾸자꾸 다른 사람을 또 기쁘게 해주고 싶다. 사람들의 희망이 되고 싶다는 욕심이 가장 위대한 것이다. 그 욕심이 나를 움직이고 다른 사람들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4

좀 더 현실적인 이야기


(1) 예비순환: 최병권/김정일/백현관/정원준/정경호

 

휴학을 하고 2006년 3월부터 예비순환을 들었다. 비전공분야라서 이해 못 할 것을 예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최고답안을 보면서도 '이번 순환이 끝나면 이렇게 쓸 수 있게 되는 건가'하고 바보같은 기대를 하곤 했다. 아는 것이 없어서 교과서 베껴 쓰기를 했더니 예비순환 정치학이 거의 끝날 때 쯤 <미시경제학(이준구)>과 <거시경제론(정운찬, 김영식)>을 A4로 다 옮겨놓게 되었다. <행정법개론(장태주)>도 한 번 읽었다. 김정일 단문프린트는 그냥 내버려뒀다. <공공행정의 제문제(백현관)>를 산 게 아까웠다. 그냥 백과사전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현대정치의 동학(고경민)>과 <민주주의 이후의 민주주의(최장집)>을 읽었고 <정치학의 이해(서울대교수진)>은 백과사전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2) 1순환 & PSAT 기본강의: 최병권/김정일/황선준/신희섭/백현관/이승일/한상준

 

수업을 들으면 이해는 됐는데 여전히 문제 자체를 이해 못했다.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론>을 한번 더 읽었고, 풀지 못한 최병권 모의고사 문제를 모았다. <행정법개론>을 다시 읽었고, 김정일 단문프린트와 사례풀이를 조금 봤다. 아주 조금. 행정법에 왠지 자신이 생겼다. 어리석게도. <시스템행정학(황선준)>을 샀고 역시 후회했다. 백과사전으로 썼다. <나의 정치학 사전(강준만)>을 꽤 재미있게 읽었지만, 정치학 수업은 거의 듣지 않았다.<알고리즘 자료해석/상황판단(이승일)>을 눈으로 풀었다. 팔 때 값이 좀 싸게 먹혀서(약 70%) 아까웠지만 그래도 후회는 안 한다. 한상준 프린트를 모았다. 돈이 안 들어서 좋았다.김정일 선생님한테 질문하러 갔다가 카리스마 킹왕짱에 반해버렸다. 우왕ㅋ굳ㅋ

(3) 2순환: 김진욱/김정일/이원강/최병권

경제학은 울며불며 매달렸다. 만약에 떨어지면 경제학에서 과락이 나와서 떨어질 것 같았다. <미시경제학(성백남, 정갑영)>과 <거시경제론>을 다시 보았지만 이해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김진욱 프린트와 모의고사를 모았다. <행정법개론>을 포기하고, 김정일 단문집을 읽었다. 사례문제들을 풀면서 자만심에 빠졌다. 이원강 행정학을 들었고, <국제정치 어쩌고>를 읽었지만 정치학 수업은 듣지 않았다. 최병권 답안지경제학을 들었지만 중도에 포기하고 <거시경제론>을 다시 읽었다. PSAT 문제집을 사모았다. 시리즈, <신헌> 그 밖에 헌책방에서 구할 수 있는 책들은 거의 다 구했다. 아침에 1시간(사실은 졸고 어쩌고 해서 2시간 남짓) 저녁 때 1시간씩 풀었다. 

 

(4) PSAT 모강 : 이승일/한상준/이승일

 

죽도록 자료해석 연습했다. 첫 점수는 40점대였다. 이승일 40문제 풀고 해설듣고 새거 받아와서 다시 풀었다. 12회분 전부 다 그렇게 했다. 한상준 들으면서 신헌거 복사해서 오후에 풀었다. 이승일 상황판단 들으면서 이승일거 자료해석 복습했다. 후반 자료해석은 80점대였다. 자료해석에 자신이 생겼다. 신림동으로 들어왔다. 독서실 바로 옆이었다. 6시에 나가서 1시에 들어올 수 있어서 좋았다.

(5) 1차 시험

 

언어가 끝났는데 당황했다. 나만 이런가 둘러보았지만 사람들이 별 기색이 없어서 풀이 죽어있었다. 자료 풀 때는 마지막에 호흡이 가빠지고 맥박이 빨라져서 손이 떨렸다. 머리가 핑핑 돌았다. 상황 풀 때는 눈 앞이 깜빡깜빡했다. 글자가 안 보였다. 머리 속이 새카매졌다. '이 정도라면 빵점도 문제 없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끝나고 나오면서 눈물이 나왔는데 참았다. 세상이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가르쳐주지 않은 것을 시험에 내는 것은 잔인한 짓이라고 생각했다. 엄마한테 전화가 왔는데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집에 들어오면서 엉엉 울고 들어왔더니 엄마가 누구한테 맞고 들어온 줄 알았다고 놀라셨다. 집으로 돌아갔다가 15일만에 신림동으로 복귀했다. 엄마가 수선떤다고 싫어하셨다.

 

시험 본 다음 날인가 여느 때와 같이 독서실에 엎어져서 자고 있는데 밑에서부터 토가 올라왔다. 술도 안 마셨는데 머리가 어지러웠다. 겨우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까지 와서 다 토했다. 먹은 것도 없는데 계속 토가 나오는 것이 신기했지만,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가 떠나는 것 같아서 시원했다.

 

2006년에는 꾸준히 운동을 했다. 여름까지는 태권도를 했고 가을에는 헬스로 바꿨다. 운동을 한다고 딱히 체력이 향상되는 것 같진 않지만 어차피 독서실에서 자는 시간에 살이라도 빼자는 마음으로 계속 했다. 살이 찌면 앉아있는 것이 더 힘들기 때문이다. 앉았을 때 한아름 잡히는 뱃살은 끔찍히도 싫었다.  

 

(6) 3순환: 김진욱/김정일/백현관/신희섭/정경호

 

긍정적 마인드 모드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경제학에 들어갔다. 답을 쓸 수가 없어서 슬펐다. 교과서를 다 포기하고 그날 본 모의고사 복습과 김진욱 프린트 보는 것으로 하루를 때웠다. 행정법땐 다시 기뻤다. 말이 되든 안 되든 꽉꽉 채운 것을 보면 뿌듯했다. 행정학 시간에는 다시 슬퍼졌다. 난 아무리 해도 깔끔한 글씨와 체계적인 답안지는 안 됐다. 정치학 시간에는 혼란스러웠다. 무엇을 써야하는지부터 다시 배워야했다. <정치학의 이해>와 신희섭 수업프린트를 읽었다. 정경호 정책학 프린트를 읽었다.

 

한번은 독서실에서 잠자다가 꿈을 꿨는데 Michael Kors가 나왔다. 꿈에서 내가 잘 입는 빨간색 더플코트(갑옷수준)를 입고 6513을 타고 가는데 갑자기 버스가 무너질 것 같이 위에서 부스러기들이 막 떨어지면서 내 얼굴을 때렸다. 그래서 내려서 신림9동쪽으로 걷고 있었는데 어떤 남자가 오더니 내 코트를 벗기면서 하는 말이 "You don't need this heavy coat any more."하면서 코트를 들고는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갔다. 그래서 내가 "Who are you?"그러면서 쫓아갔더니 "Michael Kors"(초등수준의 영어)하면서 나를 자기(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스튜디오(부티크?)로 데려갔다. 그러더니 드레스 같은 옷들을 펼쳐 보이면서 "What do you want?" 그랬는데 잠에서 깼다. 꿈에서라도 새 옷을 갈아입다니. 기분은 좋았다.

 

1차가 끝나고부터는 거의 1주일 아니면 2주일에 한번씩 내과를 찾았다. 계속 소화가 안되거나, 트림이 잦거나, 아니면 아예 배가 아팠다. 신경성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병원에 가는 내가 싫었다. 튼튼한 척 했던 것이 창피했다. 5월 쯤에 내시경을 받았다. 차가운 금속 혹은 플라스틱의 느낌이 뱃속을 헤집고 다녔다. 죽도록 헛구역질을 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 배 아프다는 느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소화가 안 될라치면 내시경 생각을 했다. 절대 다시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1차시험 결과가 나왔다. 65/85/52.5=67.5 역시 키울 때 제일 속 썩인 녀석이 효자된다더니 자료가 고맙다.

(7) 4순환: 김진욱/김정일/정경호/신희섭/정경호

프린트를 참고하면서 경제학 답안지를 채웠더니 100점 만점에 30점대를 받았다. 그래도 무작정 매달렸다. 매일매일 프린트 보고 백과사전식으로 교과서를 찾아보았다. 행정법은 단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암기카드를 사고 판례는 노트에 제목만 정리했다. 이 시기에 이걸 한다는 게 창피하기도 하고 짜증나기도 했지만 다 못 끝내고 시험보러 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하겠다고 마음먹고 무식하게 했다. 동시에 3순환 경제학, 행정법 모의고사를 하루에 두 문제씩 풀고, 행정학과 정치학 최고답안을 정리했다. 이원강+정경호/최이호+신희섭 프린트들을 파일로 정리했다. 사실 이 때까지도 IS/LM/BP와 RAD/RAS를 구분하지 못했다. 난 경제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었던 것 같다.

(8) 5순환: 김진욱/김정일/정경호/신희섭/정경호

거의 자포자기식으로 들어갔다. 시험도 의례적으로 치고 수업도 의례적으로 들었다. 기대보다 회의감이 더 컸고 심지어는 내년 계획까지 세웠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서도 매일 그동안 모은 경제학 모의고사와 행정법 모의고사를 계속 풀었다. 6시에 나와서 12시에 들어가는 것으로 생활을 바꿨다. 아침, 점심, 저녁은 각각 30분씩, 가고 올 때는 김정일 단문이난 행정법 암기카드를 들고 갔다.

(9) 2차 시험

행정법을 치고나니 기력이 다 빨렸다. 풀면서도 '이게 붙을 것인가, 말 것인가'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독서실에 돌아와서도 내일 과목이 손에 안 잡혔다. 경제학 정치학 정책학 행정학을 치면서 다행히 기력을 회복했다. 마지막 날 '한번도 더 보기 싫다'라는 생각으로 짐을 싸서 신림동에서 나와버렸다.

(10) 3차 시험

 

1달정도 스터디를 했다. 오후 1시 30분 정도부터 집단토론(1시간정도), 개별발표 및 질문(15분)을 해서 웬만한 주제는 거의 다루어보았다. 조인트할 때는 항상 떨려서 온 몸을 사시나무 떨 듯이 떨었다. 나를 찐따로 보았을까.실전에서 문제를 받고는 머리가 하얘졌다. '공부가 부족했구나' 후회할 틈이 없었다. 무슨 말이든 해야했다. 개별발표를 나름 잘했다고 자부했지만, 개별면접에서 중언부언 횡설수설해서 "자신의 의사표현이 정확하다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을 받았다. 역시나 횡설수설 대답했다. 끝내고 나오는 길에 '이게 붙을 것인가, 말 것인가' 또 떠올렸다.

 

2차시험 결과는 법54.66/학54.66/경62.33/정69.33/책26.66=59.48

모든 점수가 다 부끄럽지만 '행정학 80점대받은 거 아냐?!'하고 기대했던 내가 가장 부끄러워진다.

 

5.

 

다시 처음떠올려보면 바보같기도 하고 파란만장하기도 하다. 다시 하면 좀 더 체계적으로 해야지 하는 생각도 들지만 역시나 다시 하라면 죽어도 못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조금이라도 '다시 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이 든다면 내 자신한테 실망할 것 같다.사람들이 물어볼지도 모른다. '어떻게' 하면 합격할 수 있냐고. 나도 '어떻게' 하면 되는지는 모르겠다. 여기에는 60억명의 사람들이 60억개의 목소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300명의 합격자들이 300개의 합격비법을 가지고 합격했다. 나에게만 물어본다면 부담스러워서 그리고 내 방법이 최고의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요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을 못해주겠다. 방법은 자신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니, 만드는 과정에서도 자신이 그 방법을 만드는 것은 인지 못 할 것이다. 굳이 한 마디 하자면 '10분의 가치'를 무시하지 말라는 것이다. 자신이 노력했던 시간은 단 10분이라도 자신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최선을 다 한 사람은 실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이다.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 이 말도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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