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집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 감상 2014.06.08
질투는 나의 힘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도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 감상 2014.06.08
강 강 안도현 강은 물소리를 들려 주었고 물소리는 흰새떼를 날려 보냈고 흰새떼는 눈발을 몰고 왔고 눈발은 울음을 터뜨렸다 울음은 강을 만들었다 너에게 가려고 감상 2014.06.08
꿈 꿈 정호승 눈사람 한 사람이 찾아왔었다 눈은 그치고 보름달은 환히 떠올랐는데 눈사람 한 사람이 대문을 두드리며 자꾸 나를 불렀다 나는 마당에 불을 켜고 맨발로 달려나가 대문을 열었다 부끄러운 듯 양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된 눈사람 한 사람이 편지 한 장을 내밀고 어디론가 사라졌.. 감상 2014.06.08
너의 목소리 너의 목소리 오세영 너를 꿈꾼 밤 문득 인기척에 잠이 깨었다 문턱에 귀대고 엿들을 땐 거기 아무도 없었는데 베개 고쳐 누우면 지척에서 들리는 발자국 소리 나뭇가지 스치는 소매깃 소리 네가 왔구나 산 넘고 물 지나 해 지지 않는 누런 서역 땅에서 나직이 신발 끌고 와 다정 부르는 목.. 감상 2014.06.08
스팀목련 스팀목련 강연호 내가 다니던 대학의 문과대 건물 옆엔 스팀목련이 한 그루 있다 해서 진달래 개나리 보다 한참은 먼저 핀다 해서 해마다 봐야지 봐야지 겨울난방 스팀에 쐬여 봄날인 듯 피어나는 정말 제철 모르고 어리둥절 피어나는 철부지 목련을 꼭 봐야지 벼르고 벼르다 졸업을 하.. 감상 2014.06.08
꽃의 이유 꽃의 이유 마종기 꽃이 피는 이유를 전에는 몰랐다. 꽃이 필 적마다 꽃나무 전체가 작게 떠는 것도 몰랐다. 꽃이 지는 이유도 전에는 몰랐다. 꽃이 질 적마다 나무 주위에는 잠에서 깨어나는 물 젖은 바람 소리. 사랑해 본 적이 있는가. 누가 물어 보면 어쩔까. 감상 2014.06.08
동화 동화 이이체 나는 당신에게 묻는다. ㅡ 마음은 인간의 외곽이 아닌데 자꾸 들통 나는 걸까? 당신은 나에게 답한다. ㅡ 그 의문은 아름답지 않아. 나는 당신을 묻는다. 감상 2014.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