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적한 밤 고적한 밤 한용운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별에 걸쳤던 님 생각에 금(金)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칼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 감상 2014.03.23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짠 맛을 잃은 바닷물처럼 류시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걸까 마치 사탕하나에 울음을 그치는 어린아이처럼 눈 앞의 것을 껴안고 나는 살았다 삶이 무엇인지도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그것이 꿈인줄 꿈에도 알지 못하고 무모하게 사랑을 하고 또 헤어졌다 그러다가 나.. 감상 2014.03.23
별의 고백 별의 고백 이정하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와는 멀어지도록 노력하라. 조그만 새장으로는 새를 사랑할 수 없다.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당신 안에서 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은 점점 더 점점 더 넓어지도록 하라. 내가 그대에게 차마 하지 못한 말들.. 그 안타까운 마음들이 모두 모여 북쪽.. 감상 2014.03.23
흐르는 거리 흐르는 거리 윤동주 으스럼히 안개가 흐른다. 거리가 흘러 간다. 저 전차, 자동차, 모든 바퀴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정박할 아무 항구도 없이, 가련한 많은 사람들을 싣고서, 안개 속에 잠긴 거리는, 거리 모퉁이 붉은 포스트 상자를 붙잡고 섰을라면 모든 것이 흐르는 속에 어렴풋이 빛나.. 감상 2014.03.23
빈 집 빈 집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 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 감상 2014.03.23
여승 여승 백석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점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라서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 감상 2014.03.23
함부로 애틋하게 함부로 애틋하게 정유희 나는 네가 비싸도 좋으니 거짓이 아니기를 바란다 나는 네가 싸구려라도 좋으니 가짜가 아니기를 바란다 만약 값비싼 거짓이거나 휘황찬란한 가짜라면 나는 네가 나를 끝까지 속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기꺼이 환하게 속아 넘어 가주마 함부로 애틋하게 속아 넘.. 감상 2014.03.23
봄 날 봄 날 정호승 봄날에 혼자 집을 지키다가 엄마 아빠 결혼식 사진을 들여다본다 사진 위로 키 작은 개미 한 마리 기어가고 엄마 아빠는 간지럼을 타며 팔짱을 끼고 서 있다 나는 슬쩍 팔짱을 풀고 그들 한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본다 신랑 신부가 내 손을 잡는다 따스하다 창밖에 햇살이 .. 감상 2014.03.23
행복 행복 유치환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리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 감상 2014.03.23
사랑의 길 위에서 사랑의 길 위에서 이해인 당신 생각으로 해아래 눈이 부셨지요 비 내리면 하루 종일 비에 젖고 눈 내리면 하얗게 쌓여서 녹아내린 그리움 기쁘면 기뻐서 슬프면 슬퍼서 아프면 아파서 당신을 부르는 동안 더 넓어진 하늘 더 높아진 산 더 깊어진 마음 흐르는 세월 속에 눈물도 잘 익혀서 .. 감상 2014.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