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447

나폴리 4부작 |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Storia della bambino perduta

나폴리 4부작 잃어버린 아이 이야기Storia della bambina perduta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238 내가 묻자 릴라는 헐떡이면서 자동차의 경계가 해체되었다고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있던 마르첼로도 경계가 해체되어 자동차와 마르첼로가 본래 틀과 몸에서 쏟아져 나와 그 금속성 액체와 살이 뒤섞여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때 릴라는 분명 '경계의 해체'라는 표현을 썼다. 릴라가 그 표현을 쓴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릴라는 힘겹게 그 말의 뜻을 설명했다. 릴라는 내가 '경계의 해체'가 무엇인지 이해해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알아주기를 바랐다. 릴라는 숨을 헐떡이면서 내 손을 더 세게 쥐었다. 릴라는 사물과 사람의 경계는 섬세해서 무명실처럼 잘..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Storia di chi fugge e di chi resta

나폴리 4부작 떠나간 자와 머무른 자Storia di chi fugge e di chi resta,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35 "리나는 용감해. 지나칠 정도로 말이야. 하지만 도무지 현실과 타협할 줄을 몰라. 그 누구도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이야. 자기 자신마저도 말이야. 그런 리나를 좋아하는 게 힘들었어." "무슨 뜻이야?" "리나는 헌신이 뭔지 몰라."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아니야. 리나는 정말 문제가 있어. 생각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심지어는 성관계도 그랬어." 286 사실 미켈레는 릴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다른 여자들을 원하는 방식으로 릴라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미켈레는 릴라의 몸에 올라타 마음 내키는..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Storia del nuovo cognome

나폴리 4부작 새로운 이름의 이야기Storia del nuovo cognome,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21 돈도 남성의 육체도 학업조차도 우리를 구원해줄 수 없다면, 우리를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차라리 지금 당장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는 것이 나았다. 가슴속에 릴라의 분노가 느껴졌다. 내 것이기도 하고 내 것이 아니기도 한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통제력을 잃었고 그 상실감은 내게 오히려 기분 좋은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그 힘이 확장되기를 바라면서도 동시에 두려움을 느꼈다. 나중에야 깨달았지만 내가 평소에 불행을 조용히 감내라는 이유는 공격적인 반응을 나타낼 줄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런 행동이 두려웠다. 그보다는 속으로 후회를 곱씹으면서 아무런..

독서 2020.12.19

나폴리 4부작 | 나의 눈부신 친구L'amica geniale

나폴리 4부작 나의 눈부신 친구L'amica geniale 엘레나 페란테Elena Ferrante / 김지우 한길사 137 "우린 아직 친구지?" "그럼." "그럼 내 부탁 좀 들어줄래?" 릴라와 다시 가까워진 그날 아침, 나는 릴라의 부탁이라면 무엇이든 들어줬을 것이다. 집에서 도망칠 수도 있고, 동네를 떠나 농장에서 잘 수도 있고, 나무 뿌리로 연명할 수도 있었다. 수챗구멍을 지나 하수구로 내려갈 수도 있고, 비가 오거나 날씨가 추워지더라도 집에 되돌아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정작 그녀가 내게 부탁한 건 별일이 아니었고, 그래서 그 순간에는 약간 실망했다. 릴라는 하루에 한 번씩, 한 시간이라도 괜찮으니 라틴어 책을 가지고 저녁 시간 전에 공원에서 만나자고 했다. "성가시게 굴지 않을게." 릴..

독서 2020.12.17

달 너머로 달리는 말

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파람북 13 식량이 모자랄 때는 아이와 젊은이가 먹고 늙은이는 굶었다. 배고픔이 남세스러워서 늙은이들은 스스로 나하에 몸을 던졌다. 병들고 배고프면 늙은이들은 무리를 지어서 마을에서 사라졌따. 늙은이가 젊은이를 낳았으나 늙은이는 누구의 부모도 아니었다. 늙은이들은 목소리를 낮추어서 수군거리다가 그믐달 뜨는 새벽에 나하 강가에 모여 쪽배를 타고 하류로 내려갔다. 젊은이들은 늙은이들의 수군거림을 눈치챘지만 아는 척하지 않았다. 젊은이들은 나루터에 목선 한 척을 매놓고 말린 양고기와 끓인 말 피를 몇 덩이 실어놓았다. 배에 오를 때 늙은이들은 아무런 짐도 지니지 않았다. 늙은이들의 움직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배가 바다에 닿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알지 못했다....'시원기'는 ..

독서 2020.12.17

사라진 세계

사라진 세계The Gone World 톰 스웨터리치Tom Sweaterlich / 장호연 허블 92 어렸을 때 모스는 어머니가 그저 술만 마시는 망가져버린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녀 또한 상처를 받은 사람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나이가 들면서 시야가 넓어진 것이다. 누구든지 성인이 되면 똑같은 수렁에 빠지고, 그렇게 상처를 받고 나면 타인의 상처를 더 쉽게 알아보는 법이다. 142 "우리는 5,000년 미래 세계로 갔습니다." 은조쿠가 말했다. "내가 본 것은... 한마디로 경이로웠어요. 그런 경이로움은 앞으로도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겁니다. 대양이 꿀처럼 걸쭉했습니다. 550억명이 넘는 사람들과 사막, 모든 것이 온통 모래로 뒤덮여 있는 세계였죠. 옛 도시들은 무너지고 새로 건설한 도시들이 있었..

독서 2020.11.25

불안의 책

불안의 책Livro do Desassossego 페르난두 페소아Fernando Pessoa / 오진영 문학동네 67 사실 없는 자서전 다른 사람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생각만으로도 나는 불안해진다. 친구와의 간단한 저녁식사 약속마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괴로움을 불렁리으킨다. 장례식에 가고, 사무실 동료와 함께 일을 처리하고, 기차역에 누군가를 마중나가는 등의 사회적 의무들을 떠올리기만 해도 하루종일 안절부절못한다. 정작 닥치면 별일 아니고 그리 걱정할 만한 일도 아닌데 전날 밤부터 근심스러워 잠을 설치기도 한다. 이런 일은 다음에도 또 반복되고 아무리 여러 번 겪어도 나아지는 법이 없다. "나의 습관은 고독으로 인해 생긴것이지 사람들로 인해 생긴 것이 아니다." 134 우리는 얼마나 많은지! 얼마나 많은 ..

독서 2020.11.11